호남정맥/호남정맥산행기

호남 20(외희마을 쫓비산 토끼재-국사봉-망덕산-외망 포구)

만석공원 2010. 3. 9. 21:22

이제 천 오백리 호남 정맥길도 종착역에 도착했습니다.

 

이제는 꾀가 나는지 슬슬 지겨워지는 무박 산행

산행의 느낌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몇시간씩

미친 사람처럼 랜턴 하나에 의지해서 밤 길을 더듬는 것도

하두번은 몰라도 계속되면 그 의미를 찾기가 힘들어 집니다.

 

이 캄캄한 밤에 왜 이 산길을 더듬고 있는지

이렇게 정맥을 답사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어디에 의미를 두고 흘러가야 할 지..

 

지나간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느낌이 더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면

더욱 더 무박 산행이 싫어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먼 길 어쩔 수 없는 무박산행이 될 수 밖에 없고

앞으로도 많은 무박 산행이 앞에 기다리고 있음은

직장을 그만 두고 텐트를 짊어지고 떠나지 않는 다음에야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는 일입니다.

 

언제인가 기회가 되면 다시 와 볼 것이라 생각을 해 보지만

그도 쉽지 않을 것이란 것은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마지막 우정 산행으로 동참한 인원을 토끼재에 내려 놓고

버스는 어치 계곡을 따라 외희 마을로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사방이 조용한 2차선 마을 도로는 개 짖는 소리 하나없이 조용하기만 한데

개울 건너 민박집 뒤로 들어가는 산행로를 밝혀 주려는 듯

주황색으로 빛나는 가로등만이 밤길을 밝혀 줍니다.

 

4시 7분 민박집 앞뜰을 지나 뒤꼍으로 돌아 산길로 랜턴을 비추기 시작합니다.

 

민박집을 겸해 고로쇠나무 수액 채취를 업으로 삼는 듯

산 등성이를 벌채하고 심어 놓은 수백그루의 고로쇠 나무는

수액을 뽑기 위해 몸통에 링거 주사처럼 파이프를 꼽고 있습니다.

 

사람이 고로쇠 수액을 먹으면 얼마나 더 장수를 할 수 있을 것인지

또 얼마나 많은 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몸에 파이프를 꼽은 고로쇠 나무의 신음 소리가 들리는 듯 하여

짐짓 모르는 체 더 빠른 발걸음을 옮깁니다.

 

정맥길이 아닌 어프로치 길이라 더욱 가파른 들머리는

금방 숨이 턱에 닿도록 후끈하게 달아 오른 몸은

새벽 찬공기 속으로 증기기관차처럼 하얀 김을 연신 토해 내기 시작할 무렵

부드러운 오르막으로 변해 숨을 고르며 오른 길은 4시 25분 정맥 마루금 능선에 몸을 올려 놓습니다.

 

잠시 숨을 가다듬고 안에 입은 자켓 한겹을 벗어

배낭 안으로 밀어 넣습니다.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 예보 때문에 배낭에는 우비까지 준비했지만

어느 정도 비가림을 위해 방수 자켓을 입고

안에는 티셔츠에 방풍 방한을 위한 자켓까지 입었던 탓에

몸의 온도가 더욱 빨리 올라간 듯 합니다.

 

섬진강가를 따라 군데군데 펼쳐진 하동 쪽 마을의 새벽 불빛이

상수리 나무 가지 사이로 듬성듬성 비춰 들어오는데 잔뜩 찌푸린 채로

어두운 하늘은 별빛 달빛 하나 마루금에 내려 놓지 않습니다.

 

랜턴 불빛을 벗삼아 마루금의 고도를 서서히 올려 갑니다.

캄캄한 밤길..

이제는 외로움보다는 혼자만의 사색을 즐기는 길이 되었습니다.

 

봄을 기다리는 철쭉 가지만이 능선을 타고 넘는 찬바람에 흔들리는데

4시 30분 관동 마을에서 올라오는 게밭골 이정표를 지나 마루금은

땀을 요구하는 듯 오르막길을 앞에 내어 놓습니다

 

4시 43분

상수리 나무에 표지만이 묶인 채

정맥꾼을 기다리고 있는 갈미봉에서 사방을 둘러 보지만

알상한 상수리 나무 가지 사이로 새벽 찬바람과 함께

흔들거리는 시골의 새벽 불빛만 올라 올 뿐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합니다.

 

오늘은 천천히 산행을 하기로 작정했습니다.

보고 감상할 수 있는 것을 모두 놓쳐 버리는 바보스러움과

산 속에 있는 맑은 공기를 폐부 깊숙히 들이쉴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어리석음

이런 미련한 산행을 할 필요가 없는 듯 합니다.

 

산에서 내려가서 어느 정도 씻을 시간이 필요한 경우에는

또는 먹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한 경우에는

맨 뒤의 후미보다 딱 그 정도만 단축시키면 될 일이지만

오늘은 그럴 일도 없이 함께 뒤풀이를 하는 날..

후미와 발을 맞추면서 호남 정맥의 아쉬움을 달래볼 생각입니다.

 

군데 군데 바위가 있기는 하지만

그리 난이도가 높지는 않은 능선길을 따라 흘러

5시 30분 나무 판대기로 쫓비산이란 이름을 만들어 상수리 나무에 묶어 놓은

정상에서 흔적을 남깁니다.

 

쪽빛 섬진강 물빛 때문에 이름지어 졌다는 이야기도있고

뾰족해서 쪼삣하다는 말이 변했다고도 하고

특이한 산 이름에 따라 산행기는 여러가지 이름 추정을 해대지만

 

여순 사건 이후 공비가 완전히 토벌되는 51년 겨울까지

이 곳 백운산과 지리산은 밤과 낮의 주인이 수도 없이 바뀐 곳입니다.

 

능선 곳곳에 폐허가 된 참호의 흔적이 말해주듯이

서로가 다른 생각을 가진 이유만으로 서로를 죽여야 했던 능선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동화되는 삶이 처음부터 거부된 땅이었습니다.

반대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이 곳에 있을 수는 없는 노릇

반대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공비라는 이름이 되었고

토벌해야 하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를 해치는 짐승도 아니고,

같이 웃고 울고 곁에서 함께 하던 이웃이었는데

생각이 다른 사람은 더 이상 함께 할 이웃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쫓비산의 이름은

내 생각에는..적어도 나의 개인적인 생각에는

빨치산 공비를 쫓아냈다는 의미에서 6.25이 후에 붙여진 듯 하지만

어디에서도 그 정확한 근거를 찾기란 어려웠습니다.

 

광양에 있는 향토 사학자들에게 물어봐야 할 일이거나

주변에 아직 생존해 계시는 노인들에게 물어볼 일이란 생각을 해 봅니다.

 

매화꽃 만발한 계절이 될 때면 찾는 쫓비산은

5시 43분에 청매실 농원으로 내리는 일반 산행길을 벗어나

토끼재를 향해 산객의 흔적도 드문 거치른 정맥길을 따라 흘러 갑니다.

 

상수리 나무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허리가 부러져서 산길을 막고 있습니다.

외부의 충격 흔적도 없는데 스스로 허리가 부러지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듯 합니다.

 

참으로 재수없는 경우입니다.

그렇지만 운명으로 돌릴 수밖에 없는 일

 

인생살이에도 이런 일은 심심치 않게 일어납니다.

피할 수도 없어 운명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일들

그렇지만 인간이기에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 떨어져도

솟아날 구멍을 찾고 재기할 기회를 꿈꾸며 기다리기도 합니다.

 

신세만 한탄한들 상황이 좋아지는 것 없고

하늘과 운명만 원망하며 앉아 있은 들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내게 떨어지는 어떤 시련일지라도

겸허히 받고 또 극복할 때를 기다리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껴봅니다.

 

갈잎들이 지나고 솔잎으로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한 정맥길은

부드러운 발 빝 촉감의 연속입니다.

서서히 고도를 내려가기만 하는 길에 왼쪽으로는 낡은 철조망이 나타나고

등산로를 막는 통나무까지 나타나는 것이 개인 사유지로 산행 금지임을 알리고 있지만

가기로 작정한 마루금 길을 멈출 수는 없는 일입니다.

 

6시 10분

자연 휴양림 공사로 출입금지라는 표지가 걸린 채로

컨테이너 박스 한개나 덩그러니 놓여 있는 느랭이골 자연 휴양림 사무소 곁을 지나 토끼재에 내립니다.

 

넓직한 마당에 산약초 재배지역으로 출입을 하면 고발하고 형사 처벌하겠다는 문구를 바라 보며

오른쪽으로 난 임도를 따라 부드러운 마루금을 밟아 올려 6시 48분에 불암산 정상에 오릅니다.

 

섬진강 건너편 하동읍의 아침이 밝아 옵니다

반대편으로는 백운산 어치 계곡을 다라 흘러내린 물을 담아 놓은 수어저수지 물빛이 아름답습니다.

뒷 쪽으로는 이미 멀어져간 아득한 백운산과 억불봉의 모습이 보입니다.

앞 쪽으로는 광양으로 향해 국사봉으로 이어가는 능선이 굽이치며 흘러갑니다.

 

랜턴을 접어 넣고 사방을 조망하며 구경을 한 다음

천천히 발길을 옮기기 시작합니다.

 

매화꽃이 탐스럽게 피기 시작한 매실나무 과수원을 지나 7시 17분

탄치재 고갯길을 지납니다. 소나무 숲으로 이어진 길은 눕고 싶을 정도로

부드러운 침대 같은 촉감을 전해 줍니다.

 

8시 19분 마을 야산 처럼 흘러가던 마루금을 바짝 일으켜

몇번의 바위  틈새를 지나 올라 국사봉 정상에 오릅니다.

 

갑자기 떨어지는 온도와 함께 느닷없이 함박눈이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별스런 기후의 변화입니다.

 

누가 무엇 때문ㅇ에 얼마나 국가의 안위를 생각했기에

국사봉이란 이름을 지었는가에 대한 안내 해석은 없이

국사봉 가운데에는 옛날 봉화를 올렷음직한 돌무더기 터만 남아 있습니다.

 

아마도 고려 이 후로 만들어진 봉수 시스템에서 봉화를 중개하던 

장소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배낭에 넣었던 자켓을 다시 꺼내 입고

국사봉 바로 아래에 있는 무명 묘소 앞에 앉아 아침을 해결합니다.

잠시 내리던 눈발은 차츰 약해지고

카스테라 하나로 아침을 해결한 후 다시 배낭을 짊어지고 일어섭니다.

 

멀리 이어갈 광양만의 끝 천호산 너머로 광양 제철의 연기가

봉수대처럼 온 하늘을 덮어 올리는 모습이 가물가물 보이기 시작하며

키 작은 소나무롸 참나무 잡목으로 우거진 호젓한 길을 따라 흘러 내리다가

부드러운 산길로 마루금까지 올라온 매실 과수원과 밭길을 따라 걸어 갑니다.

 

9시 16분 순흥안씨 묘소 앞에서 다시 자켓을 벗어 배낭에 넣은 후

대나무 숲을 지나 매실 농장으로 올라온 농로를 따라 내려

마루금에 앉아 있는 매화꽃 가득 핀 매실 농장을 가로 질러

9시 16분에 정박산 정상을 지납니다.

 

묘소마다 심어진 동백나무 꽃을 바라보며 9시 46분 뱀재를 지나

마루금까지 올라와 앉아 있는 밭을 가로 질러 산 길의 흔적도 없는

마루금을 찾아 헤매입니다.

 

저만치 오른쪽 밭둑 아래로 이곳 주민들도 같이 이용하는 듯한 오솔길이 나 있지만

웬지 마루금으로 제대로 걷고 싶은 생각이 들어 잡목 가지를 헤치며 갑니다.

꽃도 카메라에 밀어 넣고,가시나무에 걸려 겨울을 지낸 밤 한송이도 가시나무에 밀어 넣고

 

가까워진 광양만의 시원한 모습과 함께 매실나무마다 활짝 핀 매화꽃을 바라보며

발의 피로를 잊고 갑니다.

 

정맥 마루금은 중산 마을의 민가 뒤꼍으로 들어가

대문으로 나오는 아주 특이한 모습으로 이어집니다.

 

정맥 산행을 하면서

마을 가운데 골목길을 헤매이거나 사찰이나 교회 안으로 들어가 뒤로 나오거나

공동묘지 가운데를 지나거나 군부대 울타리 곁,대학교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 걷기도 했지만 개인주택의 집안으로 들어가서 집뒤의 산으로

이어지는 길은 처음이다 보니 당황스럽기 조차 합니다.

 

집주인에게 고마움의 인사라도 건넬양으로 고개를 돌려 현관을 보았지만

집안에는 아무도 안계신 모양입니다.

반쪽이 열린 대문으로 나와 중산마을 앞 도로를 따라

10시 26분에 남해 고속도로 밑의 굴다리를 가로지릅니다.

 

한여름이면 가파른 절개지도 과수원으로 입산 금지로 되기 때문에

절개지 오른편을 따라 올라야 하겠지만 겨울철이라 틀별히 길을

찾을 필요도 없이 마루금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 바로 절개지에

코를 박고 급경사를 오릅니다.

 

해발 고도가 거의 0이 될 정도로 바짝 내렸던 길이라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라도 된비알이라 쉽지 않은 발길입니다.

 

모두들 앞서 가고 황홀한 봄의 내음에 취하고 주변의 경치에 녹아

여유를 부리다 보니 내가 맨 꼴찌가 되어 있습니다.

 

자박 자박 한걸음씩 짚어 10시 55분에 천왕산 정상을 밟습니다.

후미로 가는 10여명이 정상에서 휴식중입니다.

단체로 증명을 남기고 건너갈 망덕산과 섬진강 하구 앞으로

산에 가려져 굴뚝의 연기만 보이는 광양 제철 단지를 가늠합니다.

 

사과 한개의 간식을 입에 물고 남쪽 방향으로 광양 쪽을 향해 흐르던 마루금은

안부를 내렸다가 살짝 봉우리를 쳐 올려 동쪽으로 방향을 바꿔

부드럽게 내리막으로 이어지며 망덕산을 향해 흘러갑니다.

 

 왼편 남해고속도로를 빠져 나오는 진월IC가 있는 만덕리에서는

오후 1시부터 광양의 드래곤즈 전용 축구장에서 무슨 행사를 한다는 안내 방송이

산 위까지 울려 퍼집니다.

 

11시 40분 중앙 분리대로 4차선 도로가 지나는 망덕리 고개를

철조망 밑으로 기어서 내려 도로를 가로질러 망덕산으로 향합니다.

 

개나리가 노한 수줍음으로 꽃잎을 열기 시작한 고갯마루는

이미 써레질이라도 할 듯  봄물 가득한 논은 초록색으로 변했습니다.

 

오늘이 경칩이 바로 어제 지났으니 어디 급하게 세상에 나온

개구리라도 있을까 잠시 두리번거리다가 망덕산으로 발길을 옮겨갑니다.

 

12시 9분 약간의 가파른 길을 잠시 내주던 망덕산 봉우리에 오릅니다.

면장과 리장등 주민들이 힘을 모아 세워 놓은 망덕산 표지석이 반깁니다.

호남 정맥의 시작점이라고 의미를 두고 주민들은 일종의 자부심까지

가진 듯 합니다.

 

덕을 바란다 해서 망덕산일텐데 무슨 덕을 그렇게 바랬을까요

섬진강 건너편 하동과 광양만에 펼쳐진 광양 제철과 광양시 일대를 내려다 봅니다.

 

이 곳 주민들의 주요 산책로에 하나인 듯 산행로는 잘 다듬어져 있고

북쪽 편으로는 남해고속도로와 멀리 백운산이 잘 보이는 조망이 좋은 바위에

팔각정까지 만들어 놓았습니다.

 

바위에 떠 있다 해서 부석정이라 이름을 지은 모양입니다.

잠시 아득히 멀이 있는 백운산을 바라보고 발길을 돌려

외망 포구를 향해 길을 내립니다.

 

산 끝머리에 있는 허름한 가정집 모양의 덕선사 뜰 곁을 지나

12시 38분 외망포구 앞의 호남정맥 시작점이라는 표지판이 서 있는 곳에서

호남 정맥의 마지막을 마무리 합니다.

 

횟집으로 옮겨 복어와 아나고 등의 잡회

그리고 술 몇잔으로 1년간의 자축 뒤풀이를 하고

호남 정맥 종주 기념패를 들고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서 실린 피곤한 몸은

어느새 달콤한 잠으로 빠져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