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날씨가 추워졌다.
서울 지역은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니 호남 지역의 날씨를 알 수 없어
모처럼 날씨 핑계삼아 토요 산행을 접고 인터넷을 뒤적거린다.
영하 5도..에서 0도 사이를 오락가락..
대간 길처럼 고도를 높이 올리는 것도 아니고..
풍속은 북서풍..또는 서풍으로 초속 3미터 이니..
산행 준비를 위해 이것 저것 옷을 꺼내 보지만 옷을 고르기가 쉽지 않다.
얇은 티에..기모가 들어간 방풍 자켓..그리고 바람막이 자켓..
이렇게 삼겹살로 상의 산행 준비를 하고 하의는 기모가 없는 겨울 바지와
강수확률 70%에 눈비를 알 수 없으니 배낭까지 뒤집어 쓰는 우의와 함께
스패츠와 아이젠을 챙기는 것으로 산행 준비를 마친다.
오후 10시로 1시간 앞당긴 버스로 떠나지만 승차할 사람을 놓치고 신갈정류장을
지나치는 해프닝으로 오산에서 수원까지 한바퀴 돌고 내려간 버스는 남쪽 지방으로
내려가면서 도로에 쌓인 눈으로 인해 속도가 자꾸 떨어진다.
저녁을 일찌감치 먹은 탓에 배가 고파 온다.
새벽 2시 백양사 휴게소에서 우동 한그릇으로 허기를 채우고 광주를 지나
보성으로 내려가는 버스는 쏟아지는 함박눈 속에 헤드라이트를 비춰대며
속도를 올리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엉금엉금 기어 간다.
무박 산행답지 않게 밤이 꼴딱 새다시피 지나가버리고 새벽 5시에
오가는 차량 하나없이 하얗게 눈이 덮힌 채로 가로등만 졸고 있는 봇재 고개에 도착한다.
눈은 그쳤지만 새로 내린 눈에 얼지 않은 모습이 아이젠은 아직 차지 않아도 될 듯..
눈을 잔뜩 머금은 구름들 사이사이로 이따금 비치는 별 빛을 올려다 보면서
스패츠만 차고 아침밥은 차에 남겨둔 채 물과 과일 등의 간식만 넣은
간편 배낭을 짋어지고 주유소 왼쪽 시멘트 도로를 따라 랜턴을 비추며 정맥길을 더듬기 시작한다.
시멘트 도로를 따르던 길은 녹차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철대문으로 굳게 닫히고
울타리 오른쪽 곁을 따라 이어진 산길을 통해 마루금으로 접어 든다.
넓은 임도처럼 꾸며진 산길은 커다란 고도 차이의 너울도 없이 편안한 산책길을
안내를 하면서 조금씩 고도를 높여 간다.
세겹으로 입은 등산 복장이 덥다.
얇은 티셔츠지만 방풍이 되는 기모 자켓과 또 방풍 겉자켓을 입었으니 빠른 걸음에
발생한 땀이 빠져 나가기에는 충분치 않은 듯 등줄기는 금방 땀으로 채인다.
앞섶을 열어 젖히고 능선을 흘러가니 영하 3~4도쯤 되어 보이는 밤바람이
오히려 시원스럽게 몸을 파고 들어 상쾌한 느낌을 가져다 준다.
왼쪽으로 점점이 박힌 채로 늘어선 보성에서 봇재로 향하는 18번 국도의 가로등
불빛이 하얗게 내린 눈에 반사되어 아름답게 망막으로 들어와 박힌다.
목차밭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이어지는 마루금은 산불감시 초소가 있는 100여미터의
작은 너울을 넘어 내려가 5시 43분에 화죽리와 삼산마을을 잇는 임도길을 가로질러 올라
6시 17분에 봉수대가 있는 봉화산의 정상에 오른다.
날이 밝지 않은 어둠 속에 2000년에 복원한 봉수대가 득량만을 내려다 보며 자리잡고 있다.
왜구가 침입할 때면 봉화를 올리기에 가장 적합한 득량만 전체를 한 눈에 아우르고
내려다 보는 장소일 듯 하다.
일림산에서 부터 이 곳 정맥길의 봉우리마다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강강수월래라도
벌이며 떠드는 광경을 칠흑 같이 어두운 바다 가운데서 바라본다면 그 규모에 간담이
서늘하여 함부로 접근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얼핏 들었다.
허장성세..
절대적으로 약한 나를 과장시켜 적을 속임으로 나를 지켜내는 병법의 기본인 허장성세는
유교적 사고방식에 접목되어 우리의 생활 속으로 파고 들어 체면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가식이 일상화된 모습을 보인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위장적인 생활은 예의를 차리기 위한 선의의 행동도 있을 수 있고
타인으로부터 무시되는 경우를 탈피하기 위한 방어적인 모습도 있겠지만
타인을 속여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는 계산된 모습도 있으니 이런 못브들을 간파하며
편안하게 살기가 그리 녹녹치 않은 세상이 되었다.
앞섶을 열어 젖히고 가지만 오르막 길에 온 몸이 후끈 달아 등줄기에 땀이 이미 흥건하다.
기모 자켓을 배낭에 넣고 얇은 티셔츠에 바람막이만 입고 길을 재촉한다.
그다지 너울이 심하지 않은 봉우리를 타고 넘는다.
정상 봉우리에는 이름조차 걸려 있지 않지만 지도에는 배각산이라 되어 있는
봉우리를 타고 넘어 능선을 흘러가는데 고흥반도 하늘 위가 빨갛게 달아 오른다.
7시 43분이 일출 시각인데 6시 52분에 주변이 어둠에서 서서히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7시 5분 임도가 지나는 풍치재를 내렸다가 일출을 봐야겠다는
욕심으로 발길을 서둘러 능선으로 올라가지만 하늘의 붉은 기운만 더해지며 밝아
올 뿐 해는 쉽사리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붉어지는 하늘만 카메라에 담지만
노출시간이 길어지면 고정 삼각대가 아니면 손 흔들림으로 사진 품질이 떨어질
것이 예상되는 일이니 아름다운 모습을 제대로 담지 못하는 것이 못내 서운하다.
일출조망을 볼 수 없도록 마루금은 방향을 좌틀하여 완만한 경사길을 타고 내려
경전선 철도가 지나는 터널 위에 조림된 편백나무 숲을 지나 7시 21분 그럭재에 내린다.
보성읍에서 벌교 방향으로 나가는 우리나라의 맨 남쪽 동서를 가로질러 가는 2번 국도에
있는 이름도 희한한 그럭재는 고개 너머에 기러기 휴게소가 있는 것으로 보아 기러기가
축약되어 만들어 진 듯 하니 겨울 철새 기러기들이 풍성한 바닷가 먹이를 찾아 많이도
날아왔던 모양이다.
그럭재 고갯마루에 대기중인 버스에서 아침을 꺼내 먹는다. 산에서 먹는 것보다는 춥지 않은
버스에서 따뜻하게 보온된 도시락 누룽지에 물을 부어 먹으니 식사 속도도 빠르고
불편함도 없어 좋다.
7시 48분 식사를 마치고 차가 드문드문 다니는 4차선 국도 중앙 분리대를 무단 횡단하여
대룡산으로 향해 마루금을 밟아 오른다. 10여분 올라간 정맥길은 바로 편안한 산길을 안내하고
어느 새 해는 반 뼘 남짓 올라와 오른쪽으로는 햇살이 득량만 바닷물에 반사되어
곱게 파고 든다.
섬진강을 경계로 하여 우리의 판소리는 남원 중심의 동편제와 이 곳 보성 중심의 서편제로
나누어 졌다. 굵을 선으로 대변되는 맺음이 분명한 동편제와는 달리 끝이 늘어지고 긴 여운 속에
소리를 말아 내는 간드러지는 기교를 부리는 서편제는 십수년전 영화로도 이미 세간에 많이 알려져 있다.
박유전에 의해 정립되어 박유전제..또는 그의 호를 따라 강산제라고도 불린다는 서편제는 이 곳 대룡산
줄기 밑에 본고장임을 알리는 문화관까지 있고 지금은 조상현 명창으로 대가 이어져 내려 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상여소리만 들어도 가슴 속까지 깊이 파고 들어 아리게 만드는 남도 소리는 이제는 특별한
시간을 만들어 마음을 먹어야 들을 수 있는 소리가 되었고 온갖 매체는 눈과 귀를 시끄럽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뿌리조차 알 수 없는 음악이 자리잡고 있으니 이런한 문화적 환경 변화로
인해서 우리의 생활도 옛날의 여유로움을 잃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8시 48분에 대룡산 줄기로 나가는 346봉 삼각점을 지나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댄 마루금은
참나무 숲에 이따금 노간주 나무가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며 하얀 눈이 살짝 덮인 부드러운
낙엽길을 밟아 가며 9시 31분 넓게 터를 잡은 광산김씨 선산을 지나 9시 40분에 845번 2차선
지방도가 지나는 오도치에 내린다.
커다란 봉분과 비석에 뒷면에 비문까지 새겨져 있어 한 시절 집안을 대표할 정도로 권좌에
중심에 있던 인물이 쉬고 있는 자리인가 해서 앞면을 바라보니 벼슬없이 학생으로 되어 있다.
이 정도의 봉분을 가진 묘는 대간 정맥을 종주하면서 왕손이거나 적어도 당상관 이상의
벼슬이라도 지내야 했던 사람들인데 아무런 벼슬없이 이정도의 봉분을 만든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비석 뒤에 있는 비문을 태연히 읽고 앉아 있기에는 먼 길이 허락치 않는다.
그냥 광산김씨 집성촌이니 이 지역의 거의 모든 농지 산지가 광산 김씨 소유일 것이고
근해 어업이나 뱃길 무역 등으로 큰 돈을 벌어 지방 유지 생활을 했던 사람일 것이라는
추정만 해 본다.
방장산으로 정기산행을 온듯..
오도치 고갯마루에 버스를 세워 놓고 산행 준비를 하는 화순 산악회를 뒤로 하고 이어 들려오는
화순 산악회의 산행 준비를 위한 피티체조 구령소리를 들으며 몇번 체조일까 생각을 하는 사이에
제법 경사가 급한 마루금 고도 200여미터를 별로 힘들이지 않고 올랐다.
군데 군데 양지는 눈이 이미 녹고 아직 볕을 받지 못한 지역은 하얗게 덮은 눈으로
부드럽게 이어진 능선을 뒤틀며 흘러가던 정맥길에 득량만을 내려다 보는 따뜻한 자리에
자리잡고 있는 금성 나씨 묘소에서 10시 15분 잠시 배낭을 벗어 놓고 사과 한개의 간식으로
멀리 바닷가 들판 너머로 물결을 출렁이며 햇살을 반사시키는 득량만을 바라 본다.
살짝 부드러운 오르막으로 올렸던 정맥 마루금은 10시 36분 오도마을에서 올라
방장산으로 향하는 통신탑 중계소 관리용 도로가 개설되어 있는 파청재에 내린다.
잘 가꾸어진 시멘트 도로를 따라 오르지만 지속적인 경사로 만만치 않은 힘을 빼게
만드는 것이 소백산 오름길과 유사한 모습이다. 10시 55분 좌우 마을에서 방장산을
오르는 산행로인 듯한 약수터 사거리 이정표를 지나 11시 9분 해발고도로는 별로
높지 않지만 주변 조망을 맘껏하면서 나름대로 혼자 우뚝한 모습을 보이는 방장산에
닿는다.
방장산 정상에는 순천 KBS에서 설치한 통신 중계탑 안테나가 커다란 버섯의 모습으로
여러게 달려 있고 무인 관리 사무소가 통신탑 밑에 자리잡고 있다.
관리 사무소 옥상으로 올라가 득량만과 벌판을 바라보며 햇살과 함께 어우러지는
아름다움을 몇장 렌즈에 밀어 넣고 이제는 희미해져 버린 제암산 일림산의
모습과 함께 구불구불 펼져진 지나온 정맥 줄기의 모습을 바라 보며 가슴이 탁
트여져 오는 기쁨을 잠시 느껴본다.
앞으로 보이는 주월산은 커다란 출렁거림없이 부드러운 능선으로 이어진 것이 보이고
저 멀리 존제산과 함께 호남정맥의 끝 종점인 백운산이 드디어 희미한 실루엣으로
눈에 잡히기 시작한다.
화강암으로 만든 사각기둥의 작은 표지석을 역광이 들지 않도록 반대방향으로
돌려 앉힌 후 한장의 증명을 남기고 방장산과 이별을 한다.
완만하고 부드러운 낙엽으로 깔아 놓은 능선길을 따라 흘러가는데 구름과 햇볕에
따라 날씨는 5분이 멀다하고 변화를 나타낸다. 함박눈이 쏟아지다가 곧 멈추고
눈이 바람에 쓸려 날리다가 다시 햇볕이 들고...
하늘을 보니 파란 하늘 사이로 보이는 구름이 흘러가면서 지나가는 자리마다
눈을 뿌리고 지나가는 듯 하다.
좌우 조망은 자꾸 덤벼드는 눈발로 인해 포기한 채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게
만들던 마루금은 고도를 100여미터 정도 내려 고당마을로 내리는 청곡길이라고
안내표지가 되어 있는 지도상의 이드리재를 11시 52분에 지나면서 다시 고개를 들어
부드럽게 타고 올라 12시에 넓은 마당과 활공장이 있는 557미터 고도의 주월산
표지석을 잡는다.
남동쪽 벌판과 그너머로 줄기를 이어가는 고흥지맥이 선연한 모습으로 눈에 들어와 박히고
앞으로 이어진 산줄기와 그 너머로 존제산과 멀리 희미한 실루엣의 조계산 모습이 들어 온다
구름 한 점 없다면 인간의 조리개는 무한하니까 조망은 끝이 없을텐데 주변의 모습으로 인해
보이는 것이 제한되는 것이 슬프다.
보이는 것만을 믿는 것이 습관화 되어 버린 인생..
어찌 보면 세상이 보이는 것에 의지해서 살 수 밖에 없이 없도록 팍팍하게 변한 면도 있겠다.
저 멀리 시야 밖에는 분명 다른 세상이 있건만 오늘도 나는 보이는 것만을 의지해 살아갈 뿐이다.
근시안적인 삶을 벗어날 수 없을까..
긴 능선을 따라 급경사를 내리다가 다시 이어지는 부드러운 능선 그리고 또다시 급경사를
내리다가 이어지는 능선 길에서..왼쪽으로 따라 내려오는 하얗게 눈으로 뒤덮인 활공장을
오르는 임도길을 바라보며 내내 내 삶을 반추해 보지만 제대로 성찰 한번 해보지 않은 내가
어찌 인생의 뚜렷한 답을 얻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12시 48분 어느 덧 고도는 300미터를 내려 시멘트 임도가 넘어가는 무남이재에 내려
고갯마루에 설치된 산행 안내판을 살펴 오늘의 종점 모암 마을을 확인한 후 광대 코재로
오르기 위해 달라 붙는다.
한걸음 한걸음 완만하게 시작된 오름길은 급경사로 내 놓는다.
코가 땅에 닿을 정도의 급경사는 아니지만 안전히 힘을 빼게 만드는 급경사 길이다.
잠시 숨을 돌렸다가 오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체력 강화를 위해서라도 주저
앉을 때까지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 우세했던지 몸은 지속적으로 꿈지럭거리며
오르막길을 한발한발 짚어 나간다.
지금까지 산행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가 어느 때인가
강한 여름 햇살에 12시간 반을 헤매이던 염암재에서 구절재 구간이 생각난다
늦여름 무등산 뒷쪽의 북산을 아무 생각없이 오르던 생각도 난다.
힘이 빠지고 급경사 오르막 길이 계속 이어질때는 늘 머릿 속은 하얀색으로 변해버린다.
아무 생각없이 무의식이 되어 한걸음 한걸음 기계처럼 움직이는 발..
인생도 이렇게 무념 무상으로 흘러갈 수는 없을까.
아무 곳에도 쓸모없는 부질없이 남아 있는 욕심 몇주먹을 털어내기가 이다지 어려운가
힘든 산길에 짊어지고 살아가는 이런저런 부질없는 미련과 욕심을 내려 놓으려 하지만
어디 도인이 아닌 다음에야 쌓인 인생의 번민이 쉽게 내려 놓아질 수 있겠는다.
거북의등처럼 달라 붙어 버리지 못하는 인생의 무거운 등짐을 짊어지고 13시 16분 광대코재
마루에 발을 딛는다. 초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안부에 있어 재라는 고개 이름이 붙어 있는 듯 하다.
철쭉으로 가득찬 선상의 마루금을 산객이 다닐 수 있도록 다듬어 놓은 것이 철쭉이 피는 오월에는
기가 막히게 예쁜 꽃밭으로 변할 듯 싶다.
아기자기한 바위까지 있는 철쭉 산길의 오른쪽은 이제 득량만 바다는 멀어지고 대곡 저수지와 함께
벌교로 잇는 넓은 평야가 펼쳐진다. 존제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은 13시 42분에 572봉의 삼각점을 넘어
흘러 내리다가 13시 46분에는 고흥 지맥 분기점을 갈라 보낸 후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급히 고도를
낮추면서 모암마을에서 천치마을로 넘는 비포장 임도에 14시에 내려 놓는다.
존제산으로 향하는 마루금은 다음으로 기약하면서 삼단으로 쌓아 놓은 고갯마루 표지석에서
한장의 증명을 남기는 것으로 오늘의 산행을 마치고 모암마을로 향하는 비포장 임도를 따라
1.5Km를 걸어 내려 대기중인 버스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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