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부터 국도로 들어서서 지름길로 내려온 버스는 구례읍에서 미리 예약한 24시간 설렁탕 집으로 들렀다.
1대의 버스가 온다는 말에 40명이 넘는 자리를 미리 차려 놓았지만 막상 밥을 먹겠다는 사람은 열사람 안팎이다.
아무리 24시간 식당이지만 예약할 때부터 밥먹을 사람은 열댓명 안팎이라고 얘기를 하든지
밥을 짓고 상을 차리고 이 밤을 꼬박 새우며 종업원 4명이나 대기시킨 꼴이 되었지만
산행을 하는 우리 일행 누구 하나 이런 일에 미안한 감정도 갖지 않는 듯 싶었다.
매정하고 싸늘한 개인주의가 가득 맴도는 느낌은 지난번 금남정맥의 장군봉 운장산 구간의
어려운 코스에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그저 자신의 목표만 있을 뿐 주변 사람과 함께 하겠다는
정은 애초부터 없는 듯 차갑게 몸에 닿는다.
백두 대간을 하고 아홉개 정맥을 타는데 그만큼 유순해지고 후덕한 정도 생기도 삶을 달관하는
것 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여느 정도의 여유라도 생기길 바랬는데, 적당히 예약한 사실도 그렇고
미안한 감정을 가져도 미안한 감정 가질 필요 없다고 딱 잘라 말하는 사람도 그렇고 내 정서에는
그다지 살갑게 다가서지 않는다.
저녁도 든든히 먹었는데 물이라도 한컵 먹을까 들어갔다가 미안한 마음에 설렁탕 한그릇 사먹었다.
30여명은 버스에서 그냥 기다리거나 가지고 온 음식을 각자 먹고 아무튼 버스로 함께 이동만 할 뿐
먹는 것은 알아서 해결하는 방식의 산행이지만 1년을 계속 해도 여전히 내게는 낯설다.
월등에서 승주읍으로 넘는 노고치 고개에는 복숭아 과수원이 고갯마루 능선까지 곳곳에 산재해 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월등 복숭아는 고도와 일조량이 적당하고 땅이 기름진 이 곳이 당도를 높이기에
적합한 모양이다.
구불거리는 노고치를 몇번이나 고개를 흔들어 대며 안간 힘을 쓰던 버스는 시집가는 부끄러운 새악시의
단장된 손톱처럼 하얀색으로 동쪽하늘에 올라 온 섣달 스무나흩날 달빛이 은은히 비춰주고 있는 고요한
노고치 고갯마루에 닿는다.
차가 도착하기 전에 차내에서 부산스럽게 등산 준비를 마치는 것도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이런 차 내의
모습을 볼 때면 외국 여행을 할 때마다 비행기가 계류장으로 움직일 때 자리에서 일어나서 짐을 내리고
문도 열기 전에 통로에 나와 서 있던 우리 한국 사람들이 아주 교양없이 보였던 생각이 떠오르지만
매번 준비를 하고 있지 않다가 뒤늦게 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혹시라도 남에게 피해를 주는 모습으로
비칠까 싶은 생각에 어느 새 나도 차 내에서 슬금슬금 산행 준비를 하는 사람이 되어 가는 듯 싶다.
3시 30분 앞서간 사람들의 랜턴 불빛은 벌써 임도를 따라 복숭아밭 길로 가물가물 할 정도로 멀어졌다.
영하 5도라는데 옷차림을 어떻게 할까 잠시 망설이다가 바람막이 자켓을 걸치고 가기로 하고
뒤늦게 버스에서 내려 이마에 랜턴 스위치를 누르고 앞서가는 빛줄기 뒤를 따라 밟는다.
임도를 잠시 따르던 길은 복숭아밭 주인의 출입금지 안내와 함께 차단기가 나오지만 차단기 옆을
지나 무시하고 들어간다. 분명히 생각에 마루금은 오른쪽 능선인데 임도는 계속 왼쪽으로 꺽어 흐르고
앞선 불빛은 임도를 따라 생각없이 걷는다.
힐끗힐끗 오른쪽 능선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을까 싶어 랜턴으로 비춰 보지만 복숭아 밭일 뿐
능선으로 달라 붙는 길은 보이지 않는다. 표지가 있어도 밭주인이 모두 제거 했겠다 싶은 생각이 들 때
길을 잘못 가고 있음을 감지한 선두의 불빛이 임도를 따라 되돌아 나오며 복숭아 밭 끝에서 오른쪽으로 꺽어
숲 속으로 들어가며 몇분의 오지 산행으로 마루금을 더듬어 산길을 찾아 올라간다.
바람막이 앞섶을 열어 젖혀도 땀이 온 몸에 젖을 때 쯤 봉우리를 올라섰던 길은 잠시 편안한 길을 내 주다가
다시 내리막으로 출렁거리며 올려 붙여 4시 17분 문유산 갈림길 이정표에 닿는다.
언제나 그렇듯 밤 길은 걷는 속도가 대단히 빠르다. 처음 산행이 시작되었으므로 체력이 충만한데다가
볼 것이 없으므로 발걸음도 자연히 빠를 뿐더러 날씨까지 추워 움직임이 빠르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
대간길은 여유로운 구경으로 다녀 평균 2.2Km/h로 다녔는데 정맥은 2.7~3.2정도로 다니고 있다.
특히 새벽 밤길은 거의 4km/h가 훨씬 넘을 듯 내리막은 뛰고 평지는 완전 속보로 움직인다.
이런 식의 장거리 산행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붙으면 오버페이스로 여지없이 퍼져버릴 일이다.
문유산이 100미터 곁에 있지만 밤에 문유상 정상에 가 본들 별 의미없는 일인 듯 싶어 정상에 가는 것을
접고 정맥길로 마루금을 따라 움직인다. 약간의 거친 바위 능선으로 몇걸음 움직이던 마루금은
급경사 내리막길을 내 주다가 이내 상수리 낙엽 가득한 부드러운 능선으로 흘러간다.
능선이 조금씩 방향을 틀 때마다 나뭇가지 위로 걸치는 달 빛은 오른쪽으로 붙었다 왼쪽으로 붙었다 하는 것이
지금 마루금의 방향은 대략 남쪽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느끼게 만드는데 갑자기 길이 희미해지고
달이 왼쪽으로 가 있는 모습이 길을 잘못 들어 오른쪽 계곡으로 내리는 길을 짚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발을 멈추고 오던 길로 3백여미터 되돌아 올라오면서 짚어 보았지만
다른 곳으로 나가는 갈림길은 보이지 않아 가던 길을 다시 밟아 가니 잠시 후 길은 왼쪽으로 틀어 돌아
능선을 따라 제대로 흘러 4시 47분 임도를 가로 질러 바랑산 줄기를 향해 달라 붙는다.
한차례 너울을 올렸다가 넘어 내린 마루금은 고도를 서서히 높여가며 하현달 빛을 완전히 오른쪽
곁으로 놓는 것이 방향을 동쪽으로 틀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고도를 높여 가며 멀리 순천 시내의 불빛이 상수리 나뭇가지 사이로 황홀한 모습으로 새어 들어 온다.
5시 50분 정맥길에서 10여미터 떨어진 바랑산 정상에 올라 시원한 새벽 바람 속에서 잠에서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 순천 시내의 화려한 도심 불빛을 바라 본다.
올라 오기에는 부담스럽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길게 급경사를 계속 타고 내려 6시 29분 17번 국도
터널이 지나는 구도로 위의 송치재에 닿는다. 민가 한채 없는 송치재 구도로 위에는 큰 도시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등록 성도가 1천명 정도는 될 듯한 커다란 복된 교회가 혼자 덩그러니 자리를 잡고 있다.
교회 앞쪽 마당 끝으로 나 있는 임도를 따라 오르다가 마루금을 찾아 임도를 버리고 산으로 들어 갔다가
다시 마루금을 따라 붙는 임도를 가로 지르기를 두어 차례 하면서 6시 43분에는 매화동산으로 향하는
임도 삼거리에 내려서서 임도를 따라 직진하여 왼쪽에 있는 외딴 민가 바로 뒷쪽에서 들어서서
산으로 달라 붙어 마루금 능선으로 난 희미한 농업 임도를 따라 산 길을 이어 간다.
잠시 부드럽던 마루금은 고도를 급격히 올리기 시작하고 몸이 달아 오르기 시작할 무렵 道자 한 글자 새겨진
화강암 표지만 덩그러니 서 있고 병풍산으로 향하는 갈림길인 황전면,월등면,서면의 삼면의 갈림봉을
7시 11분에 지나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계속 오르막길을 앞에 세워 놓는다.
터질 듯 빨갛게 동쪽 하늘이 익어 오는 것을 보니 해가 올라오기 바로 직전인 모양이다.
급하게 발길을 움직여 상수리 나무로 뒤덮여 일출 조망은 제대로 되지 않지만 그런대로
봉우리 모양을 갖춘 570봉에서 나뭇가지 사이로 올라오는 일출을 바라 본다.
불이 붙은 듯한 모습으로 빨갛게 산 너머 올라 오는 태양의 모습은 언제
어느 곳에서 보아도 신비스런 모습이다. 신기하게도 저 태양이 솟아 오르면
순식간에 대지는 달궈지고 온도가 올라가고 마음도 푸근한 여유를 찾게 된다.
45억년을 변함없는 모습으로 주변을 돌고 있는 우리 초록별을 구석구석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저 무한한 에너지는 생각할수록 신비스럽다는 표현 외에는 달리 해석 방법이 없다.
어찌 보면 저 에너지가 조금만 더 강해져도 더 약해져도 그대로 생물이 멸종해 버리는 우리 초록별에
생물의 존재 자체가 더 경외스러운 일일수도 있겠다.
양팔을 벌리고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몇차례의 심호흡을 한다.
마치 태양의 양기를 받아 들이듯.. 그렇다고 해서 태양의 에너지가 몸 속에 들어온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을지라도 심리적으로는 양기를 가득 받았다는 포만감은 충분히 느껴진다.
마루금 능선에는 오래 전에 버려진 교통호와 참호가 곳곳에 있다. 휴전선 인근의 한북 정맥 능선에서나
보이던 오래된 교통호와 참호는 이미 관목으로 우거지고 그 흔적만이 조금씩 남아 지우기 힘든 옛 기억을 살린다.
1948년 10월 19일 제주 4.3 항쟁 진압을 위해 출동하는 것을 거부하며 일어난 여순반란사건은
순식간에 여수 순천 벌교 구례 곡성을 장악하고 토벌대에 밀려 이 능선을 넘어 구례 지리산 쪽으로
반란군은 후퇴를 했다. 지금 걸어가고 있는 이 능선은 그 때 이후로 6.25를 거쳐 공비 토벌이 끝나는
때까지 수년 간에 걸쳐 수도 없이 총성이 오고간 능선이다.
지식인이나 농민이나 봉건 사회에서 벗어나자마자 일제의 손아귀에 들어 가고 36년의 일제의 수탈에서
놓여난 우리에게 사상적 정신적 구심점은 어느 것도 없었다. 내 말도 맞고 네 말도 맞고
서로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며 살아야 할 민주사회의 원칙을 어느 곳에서도 배울 수 없었던 우리는
내가 맞으면 넌 틀린 것으로 잘못 이해를 했다.
그러한 상황은 새로운 사회에서 기득권층을 형성한 친일 친미 친소 위정자들에 의해 더욱 부추겨졌고
민초들은 새로운 권력이 주는 완장 맛에 쉽게 길들여져 반대편을 사지로 몰아 넣었다.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슬픈 일이다. 형제간에 이웃 간에 총을 겨누고 서로를 죽여야 하는 일.
우리는 아직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화해하지 못하고 지구 상에 이데올로기로 인한 분단으로 남아 있는
딱 하나의 마지막 나라가 되어 있다. 어쩌면 민초들은 모두 용서와 이해를 했는데 위정자나 스스로 기득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만 자신의 편안함을 지키기 위해 용서와 이해를 거부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반란군으로 몰린 14연대 젊은이들이 쫓겨들어 왔을 골짜기와 맹렬히 뒤 쫓았을 진압군의 모습이 그려질듯이
순천을 거쳐 여수 앞바다로 이어지는 전경이 환히 내려다 보이는 농암산 정상에서 7시 50분 아침 식사를 한다.
아침 식사래야 카스테라 두개에 커피 한잔이다. 먹기도 편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고 겨울에는 가장 간편한 식사다.
농암산을 지나 서서히 고도를 낮춘 길은 편백나무 숲이 있는 장자굴재를 지나 두어번의 출렁거리는 너울을
넘어가면서 참호의 흔적만을 보여 주다가 8시59분 죽정치를 지나 오르막길을 후끈하게 달아 올려 9시 14분 갈미봉
정상에 닿는다.
골짜기로는 여수에서 구례 남원 삼례로 이어가는 새로운 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인 모습이다.
전국이 도로가 잘 뚫려 있었어도 이 곳은 오기가 참 마땅치 않았다. 광주로 먼 길을 돌아 오거나 아니면 진주 가는
고속도로를 타지 않으면 오늘처럼 국도로 내려 오는 길 밖에 없어 늘 아쉬웠는데 서울부터 감안하면 2시간 정도는 줄일
수 있는 고속도로가 건설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지리산과 여수 광양의 접근도 훨씬 쉬워질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한 차례의 작은 너울로 9 시 50분 양쪽으로 내리는 소로길이 있는 마당재 이정표를 지난 마루금은 급경사로
이어져 달라 붙어 머리를 등산화 코 밑에 박아 넣고 목에서 거친 숨소리를 한참이나 토해낸 끝에 10 30분 헬기장을
거쳐 갓거리봉 정상에 오른다.
땀을 식히고 물을 들이키며 시원하게 펼쳐진 순천시와 순천만 여수 앞바다 그리고 그 앞으로 펼쳐진 고흥반도를 내려다 본다
반대편 뒷쪽으로는 지리산의 작은 고리봉 성삼재 노고단에서 천왕봉으로 이어져 나가는 지리산 주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아름다운 모습에 발길을 움직이지 못하고 구경만 하며 카메라 셔터 안으로 풍경을 밀어 넣기에 바쁘다.
사과 한 쪽으로 간식을 해결한 후 두어차례의 쉽지 않은 너울을 앞세우던 마루금은 지리산 조망이 좋은 신선바위를
지나 급경사를 내려 11시 32분 임도가 잘 만들어져 일반 등산객이 많이 찾는 미사치 안부에 내린다.
이따금 올라오는 등산객들을 거슬러 주변을 감상하며 천천히 길을 내려 광양으로 나가는 황전터널 끝 840번 지방도로에
11시 51분에 내려 오늘의 정맥길 마루금 답사 산행을 마감한다.
구례를 지나 지리산 휴게소에서 5천원짜리 추어탕과 서비스로 주는 돼지고기 삼겹살을 먹었지만 추어탕보다는 우거지국
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듯 미꾸라지는 넣지도 않은 듯 하고, 음식에 문제가 있었는지 온 몸이 가렵고 두드러기 반점의
앨러지가 있어 월요일에 병원까지 다녀오는 일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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