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는 별이 총총한 겨울 밤 영하 5도의 추위속
낙안읍성에서 외서면 송광으로 가는 빈계재에서
4시 10분에 마루금을 찾아 산 속으로 발길을 옮긴다.
정맥 산행 외에는 산행객이 없을 마루금의 산길
폭설로 인해 녹지 않은 눈이 군데 군데 쌓여 있지만
그다지 거치른 오르 내리막이 없는 산길은 서서히 고도를 높여 가고
철쭉 진달래 싸리 등의 잡목만이 이따금 가는 길을 막을 뿐
한 밤의 산행길은 적당한 온도와 함께 바람도 별로 없어
오히려 산행을 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모습이다.
상수리 나무 사이로 이따금 비치는 낙안 읍성의 불빛과
외서면 마을의 불빛을 산행길의 친구 삼아 고도를 올려
5시 3분 511봉을 돌아 오르던 길은 외서에서 고동치로 올라오는
임도길을 만나고,눈이 소복히 쌓인 임도를 따라 산 모퉁이를 돌아 들어
5시 32분에 고동치 고개에 닿는다.
고동치까지는 수정마을에서 올라오는 비포장 임도가 잘 만들어져 있어
평소에는 승용차를 통해 올라올 수 있는 길이다.
고동산 정상까지는 억새밭으로 된 임도길에 길가에는 철쭉을 식재를
해 놓아 철쭉 산행지로 조성을 해 놓은 모습이다.
임도를 따라 부드러운 마루금을 밟아 5시 51분에 고동산 정상석을 잡는다.
정상에 있는 산불 감시 초소는 낮에는 근무자가 근무를 하는 듯 취사 도구와 함께
라디오 등이 초소 안에 그대로 들어 있다.
하루 종일 산 위에 있어도 산행객이 별로 없을 터이니 사방으로 굽이쳐 흘러가는
산을 벗삼아 바라보다 보면 인생을 소회하며 득도라도 할 듯 싶다.
깜깜한 밤하늘에 멀리 낙안읍성과 함께 가물가물 이어진 벌교의 불빛만이 망막에
화려한 모습으로 들어와 박힌다.
여순반란사건의 중심지였던 이 곳
일제시대에 억눌리며 살던 민초들은 해방 속에서 체제가 자리잡기도 전에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사상이라는 틀 속에 자신을 가두고 서로를 난도질 해야 했다.
각자 가지고 있는 생각의 차이는 서로 다른 사상의 시발점이 되고
서로 다른 사상은 서로의 체제에 저항하게 되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 왔고
이 땅에 두가지의 생각이 공존할 수 없음은 서로가 반대편을 없애야 하는
살육전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었다.
개인적인 불만과 사소한 감정까지도 함께 폭발되어 사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거침없이 벌어지는 서로의 살육 속에서 목숨을 부지하던 민초들은
하루하루를 숨조차 쉬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아! 이 아름다운 산하에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잔인하게 만들었던가!
스스로 우리의 주권을 찾지 못해 흔들리는 역사 속에서 안타깝게 스러져간 영혼들이
아직도 갈 길을 찾지 못해 춥고 어두운 겨울 밤하늘을 헤매이는 듯
고동산 위의 억새는 바바람을 못이겨 우는 소리를 내고 있다.
잠시 맑은 밤 하늘 위로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며 한세대 전에 있었을
안타까운 일에 저절로 마음이 숙연해져 오는 것을 느낀다.
넓직한 정상은 억새풀 사이로 잘 조성된 헬기장을 지나 조계산을 향한 마루금을 긋는다.
오른쪽 아래 목촌리와 평사리를 끼고 부드러운 능선으로 오르내리며 흘러가던 정맥길은
6시 56분에 하나의 산불 초소를 더 지나면서 부드럽게 고도를 낮추면서 외서면 장안리로
넘어가는 임도가 있는 장안치에 7시 3분에 도착한다.
어느 덧 하늘의 별도 자취를 감추고, 먼 동쪽 순천 방향의 산너머에서는 전체가 커다란
한세대 전에 떠난 억울한 영혼들의 핏빛을 말해 주듯이 하능을 온통 붉은 빛으로 진하게 물들인다.
임도를 가로질러 부드럽게 흐르던 길은 7시 16분에 공식적인 조계산 등산로이며
송광사와 선암사로 향하는 길이 잘 다듬어진 큰굴목재에 내린다.
이 곳부터는 일반 산행인들도 많이 다니는 길이니 산행로는 넓직하게 잘 조성되어 있고
눈이 남아 있다 하여도 이미 다질만큼 다져져 있어 산행에 큰 불편이 없다.
일반 산행을 하듯 부드러운 산길을 따라 7시 32분에 또다시 송광사와 선암사의 갈림길이 있는
작은 굴목재에 도착하니 핏빛으로 물들었던 동쪽에서 태양이 나뭇가지에 걸려 올라온다.
아~~!!
초록별이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 태양은 초록별에 발을 붙이고 있는
우리에게 에너지를 주기 위해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 왔다.
저 태양 하나에 의지하여 오늘의 호흡을 지탱하는 우리는 얼마나 하잘 것 없는 미물인가.
한 세대 전에도 저 태양은 이 땅에서 벌어지는 미물들의 다툼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며 지금처럼 온기를 나눠 주고 있었겠지.
내가 가진 작은 생각의 틀 속에서 편협한 결정과 판단으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에게 나는 저 햇볕처럼 따사롭게 포용하며 살아 왔던가.
무거워진 마음만큼 발걸음마저 무거워진 채로 오르막길을 짚어 올라 7시 58분
조계산 장군봉 앞에 버티고 앉아 있는 배바위에 오른다.
전체가 육산인 조계산에 있는 유일한 바위인 관계로 장군의 도장인 인장바위라고도
한다는 배바위는 옛날 이 곳이 포구였을 때 배를 묶어 두던 바위라 이름지어졌다고
안내판은 설명하고 있다.
노아의 방주처럼 산 위로 배가 넘어 다녀서 이름이 지어졌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는
전국에 산 곳곳 이름에 많은 흔적을 남기고 있는데 이 곳도 그런 곳 중에 하나인 듯 하다.
몇개의 조개 껍데기와 매우 유사한 석회석류의 돌조각이 바위 근처에 붙어 있어
과장을 좋아하는 동양인의 습성상 전설이라는 이름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구전되어
내려온 듯 하다.
상사댐 너머 순천 방향으로 겹겹이 쌓여 흘러가는 산줄기는 골짜기마다
아침 안개가 피어오르고, 바로 밑 계곡의 선암사는 안개를 걷어 내는 모습으로
아침을 맞는 모습인데 금방이라도 바람을 타고 스님의 불경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다.
마루금을 밟아 한차례 더 고도를 높여 8시 15분 조계산의 최고봉인 장군봉을 잡는다.
지나온 마루금이 먼 곳가지 일시에 조망이 된다.
지나온 남쪽으로는 고동산 백이산 존제산과 까마득하게 보이는 제암산 줄기까지
멀리 동쪽 방향으로는 희미하게 호남정맥의 종착역인 백운산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나라 불교의 양대 산맥인 조계종과 태고종의 본사를 품에 안고 있는 조계산
스님이 결혼을 해야하는가 하지 않는가를 가지고 의견이 갈려 종단이 나누어졌다.
결국 결혼을 하지 않는 비구승들은 송광사에 자리잡고 결혼을 하는 대처승들은
선암사에 자리를 잡았다.
태백산맥 소설로 해방 후 격동기에 이 곳의 일을 실감 있게 그려 낸 조정래 작가도
이 선암사 스님의 아들로 선암사 앞마을에서 자란것으로 되어 있다.
기독교와 천주교도 성직자의 결혼 문제에서 의견을 달리 하듯이 불교에서도 이렇 듯
의견을 달리하는 것을 보면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것은 숭고하고 거룩한 종교에 자신의
생을 다 바치는 사람들에게 조차도 어찌 할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정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소망을 기원하고 가는지 돌탑이 하나 쌓여 있다.
돌이 흔하지 않은 산에서 돌을 하나하나 주워다 자신의 소망을 기원했을 사람들을
떠올리며 내 소망은 무엇인가 더듬어 보지만 뚜렷이 하나로 요약하기가 마땅치 않아
사진 한장의 증명만 남긴 채 숙제를 머릿 속에 담고 발길을 잇는다.
안부를 살짝 내렸다가 올라 햇살이 퍼지고 눈이 녹은 양지에 앉아
카스테라 빵 1개와 따뜻한 물에 컵라면 한개를 끓여 아침식사를 해결한다.
따뜻한 물로 컵라면이 익을 줄 알았는데 전혀 풀어지지도 않으니 억지로 풀어 헤쳐
익지 않은 라면으로 배를 채우기 위해 넣는 형상이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8시 50분 송광사로 가는 삼거리에서 정맥길은 우측으로 급격히 틀어
접치를 향해 급경사길을 내리기 시작한다. 눈밭에 얼음으로 이루어진 등산길에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아이젠을 차고 급경사길을 내린다.
이따금 아침 산행을 올라오는 등산객들을 마주치며 인사를 나누는 사이에
9시 34분 접치 고갯마루에 도착한다.
접치는 승주읍에서 주암면으로 가는 국도가 지날 뿐 아니라
국도 다리 밑으로는 호남 고속도로가 지나고 있다.
접치에서 아이젠을 벗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오성산을 향해 정맥길을 더듬어
오르기 시작한다. 날씨가 더워지니 자켓도 벗고 짚티 하나만 입어도 봄날씨처럼
따뜻한 산행이다.
숨을 가쁘게 만들기나 할듯이 이어지는 산줄기 능선을 몇번인가 채면서 올리던
마루금은 몇개의 숨을 고르는 전위봉을 지나 10시 28분에 오성산 정상 산불
감시초소에 닿는다.
산불 감시 초소에는 접치부터 우리 뒤를 따라 함께 올라온 감시원 근무자가
배낭에 짊어지고 온 라면 몇개를 초소 안에 내려 놓고 무전기를 들고
근무에 들어간다.
갈 길이 바빠 감시원과 이야기를 나눠볼 시간적 여유도 없다.
멀리 하얗게 모자를 쓴 무등산을 카메라 렌즈에 밀어 넣고
다시 아이젠을 차고 급경사를 따라 내려 10시 53분에 고개 안부에 도착한다.
벌목 후 다른 나무로 심어 숲을 바꾸고 있는 중인지 수종갱신중이라는
사유지 출입금지 안내판을 지나 몇번의 오르내림이 지속되었던가
다리가 제법 노곤해지는 11시 59분에 지도상에 유치산이라고 명명되어 있는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에 닿는다.
카스테랑 빵 1개와 귤한개의 간식으로 휴식을 취한 후 12시 12분 유치고개
안부를 지나 로프가 내려진 거친 바위 급경사 깔딱고개를 숨가쁘게 올라
계곡 조망이 수려한 뱃바위를 지난다.
지도 상의 유치산과 달리 엉뚱하게도 이 곳에 유치산 정상석이 놓여 있다.
이 곳이 조망도 좋고 산도 더 높은 곳이니 이 곳 뱃바위를 정상으로 삼겠다는
이 지역 주민들의 의지가 들어 있는 듯 하다.
약간의 안부로 내려섰던 길은 다시 봉우리로 올려 12시 56분 봉우리 정상의
헬기장에 닿는다. 이미 아득해진 조계산의 조망과 함께 멀리 오늘의 산행
종점인 노고치를 향하는 도로가 보이고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인 월등면의
뜰이 눈 앞에 펼쳐진다.
귤 하나로 마지막 간식을 먹은 후 오른쪽으로 완전히 꺽인 정맥길을 따라 흘러
14시 24분에 노고치 고개를 내려 오늘의 정맥길 산행을 마무리한다.
승주읍으로 옮긴 버스는 식당에서 식사시간을 가졌지만 수돗가에서
땀만 씻은 후 식사는 하지 않았다.
일부러 발걸음을 늦춰 천천히 후미에 붙었던 탓에 산에서 충분히 먹고
다리도 힘들지 않아 긴거리의 장시간 산행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편안한
산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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