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펄펄 내려야 하는 대설인데도 올해는 아직 그럴듯한 눈구경도 못했다.
낮에 몸풀기로 올라간 삼성산 관악산에 쏟아지는 함박눈 구경을 하며 라면 하나 끓여 먹고
내려 왔지만 금방이라도 발목을 차오를 듯 내리던 눈이 그치고 나니 따뜻한 온도 탓에 녹아버려
이내 질척한 등산로로 변해 버렸다.
저녁이 되면서 온도는 쌀쌀해지는데 강원도 대간길에는 눈이 무릎까지 쌓여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전남 장흥의 정맥길이야 눈이 올리도 없으니 기본적인 눈산행 장비도
번거롭기만 하다는 생각이 들어 챙기지를 않는다.
겨울 산행에는 추운 날씨로 인해 늘 식사가 고역이다.
따뜻한 물에 컵라면 정도로 해결하거나,심지어 떡 몇조각으로 허기를 채우며 지날 때도 있고
손이 꽁꽁 얼어 붙고 바람이라도 심하게 부는 영하 10도 밑으로 가는 눈밭에서는 버너를
들이대며 끓여도 먹는 것조차 귀찮아지기 마련이다. 오늘은 따뜻한 누룽지를 만들어 보온도시락에
담고 물을 끓여 보온통에 넣어 짊어지고 뜨거운 물로 누룽지를 불려 먹을 생각으로 준비해서
사당역으로 나선다.
산행지가 남도 끝이라 워낙 가는 길이 멀어 산행 시간을 30분 앞당겨 10시 30분에 출발하기로
했지만 미처 정보를 확인하지 못해 지각하는 인원이 있어 20여분 지체한 후 버스는 출발을 했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갈 정도로 추워진 날씨에 차내에 있는 사람은 그렇다 쳐도 중간 탑승을 위해
신갈과 안성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고역스러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간다.
새벽 식사를 위해 차가 백양사 휴게소에 멈추지만 밥 생각이 별로 없다. 이번부터는 먹지 않고
산행을 시작한 후 산행 중에 아침을 먹는 방법을 시도해 볼 생각이다. 산행 전에 먹는 것이
익숙해 왔던 탓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올라가는 것이 낯설어 중간에 밥을 먹기도 하고
다른 간식을 먹기도 하고 여러가지로 해봤지만 별로 방법이 탐탁치 않다.
새벽 4시..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갑낭재에 버스는 도착하고,제암산만 산행을 하는 인원까지 꽉찬 버스에서
부산스럽게 산행 준비를 해서 내린다. 제암산을 향하는 팻말이 삐딱하게 가리키는 임도를 따라
4시 19분 제암산을 향해 발걸음을 들여 놓기 시작했다. 지난 번 용두산을 지나 내려 오면서
제암산 줄기를 익히 본 터라 족히 2시간은 올라서야 임금바위를 지날 것이란 생각을 한다.
심하지 않은 경사지만 길은 꾸준히 오르막이다. 진눈깨비와 함께 차가운 새벽 공기가 얼굴을
때리는 가운데도 몸이 후끈하게 달아 올라 머리도 등판도 땀으로 배이기 시작할 무렵 4시 51분에
큰산이라고 써진 이정표가 있는 제암산 전의 전위봉을 지난다.
한풀은 꺽어 놓았으니 제암산까지 그다지 길고 심한 급경사 길은 없을 것이라는 약간의 안도감을
가지며 땀에 젖은 몸도 식히며 건조를 위해 기모 자켓의 자크를 완전히 내려 앞섶을 열고 산행을
이어간다. 장흥 땅에서 다시 보성군의 군경계선이 올라와 이곳부터는 장흥 보성의 경계를 따라
정맥길은 흘러간다. 눈발은 진눈깨비에서 제법 굵어져 가는 눈발로 변하고, 눈발 사이로 오른쪽
장흥읍과 왼쪽의 웅치면의 새벽 야경이 망막에 들어와 박힌다.
별빛과 조용히 잠든 도시의 불빛의 야간 산행의 별미다.
망막에 들어오는 다른 것은 없으니 어두운 가운데서 비춰지는 빛에 에 대하여 가지는 특별한 느낌.
오늘의 하늘은 눈발로 인해 구름으로 덮여 별빛을 전혀 볼 수 없으니 한적한 시골 도시의 새벽잠에
깊이 취한 불빛이 가슴 속을 파고 든다.
외로움..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삭풍은 나뭇가지에 걸쳐 울어 대고..
휘몰아 치는 눈보라 속으로 깜박이는 도시의 불빛은 어둠을 가는 산길 나그네의 등대불빛이 된다.
혼자 가는 길..
함께 가더라도 결국 혼자 해결해야 하는 길..
힘들어도..길을 잘못 들었어도..
되돌리든..포기하든..길을 다시 잡든..결국은 길을 가는 사람 자신의 몫이다.
크고 작은 너울을 넘기고 견디며 살아온 인생길도 돌아 보면
10대에 만들었던 꿈으로 그대로 순탄하게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힘든 너울을 넘어가기는 산행길이나 인생길이나 멀지 않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산행길에도..
문득 지나온길을 돌아 보며 땀을 씻어내고 앞으로 갈 길을 짚어가며 펼쳐 보듯이..
인생도 한번쯤은 조용히 생각하며 쉬어갈 수 있는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
점점 거세지는 바람과 함께 내리막으로 틀었던 길은 5시 23분 웅치로 내리는 휴양림 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고도를 높여가며 도시의 불빛을 구름 속으로 감추더니 거친 몇번의 암봉을
넘어 가는데 발 밑에 이 산에서 유명을 달리한 동판으로 만든 위령패가 나타난다.
산을 좋아하다가 산에서 떠난 사람..이 곳 저 곳 산행을 하다 보면 이제는 익숙한 글귀가 되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다가 그 자리에서 떠나는 것은 어찌 보면 슬픔이라기 보다는 가장
큰 행복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 본다.
암릉을 넘어 자갈길로 바짝 마지막 고도를 높이던 정맥길은 거대한 임금바위 앞에서 왼쪽으로
우회하면서 5시 32분 제암산 표지석을 잡는다. 산의 정상에 엄청난 관모양의 마당 바위를 둘러쓴
제암산은 그 바위 모양이 임금帝 글자와 비슷하여 제암산이라 했다고 하는데 진눈깨비와 어두움으로
인하여 바위의 미끄러짐이 염려되어 위에 올라가는 것은 접고 정맥길만 밟기로 결정했다.
표지석에 한장의 증명을 남기고 촛대바위를 거쳐 공설묘지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5시 44분에 지나
눈발이 그치니 어둠에 희미한 우뚝선 형제바위 밑으로 장흥읍내의 불빛이 곱게 파고 들어온다.
눈에 비치는 만큼 카메라 렌즈에 남은 모습은 아름답지 못한 것이 노출 조정의 문제임을 알고 있지만
삼각대를 버티고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플래시를 죽이고 노출을 조정해야 하는 여유를 바쁜 정맥길은
별로 주지 않는다.
아쉬움으로 급경사를 타고 내려 장흥에서 보성으로 넘는 소로길일 뿐 아니라 주요 등산로인 곰재를
지난다. 전국 제일의 철쭉 군락지라는 커다란 안내판에 철쭉철의 모습을 화려하게 그려 놓았다.
철쭉의 잎 하나도 남지 않은 나뭇가지만 앙상한 철쭉밭 사이로 난 산행로를 따라 완경사를 올라 6시 18분
철쭉 평전에 다다른다. 넓은 마루판으로 만들어진 제단에서 사방 철쭉과 함께 제암산을 제대로 조망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철쭉 평전은 곰재에서 바로 올라와 있는 산이라 곰재산으로도 불리는 모양이다.
진눈깨비가 그치고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 반쪽 하현달의 달빛에 힘을 얻어 제암산을 바라 보지만
어렴풋이 임금 바위가 높이 올려다 보일 뿐 조망이 되지 않는다. 뒤로 돌아 부드러운 능선으로 이어지는
정맥길을 따라 6시 26분 간재를 지나 몸이 또다시 달아 오를 무렵 아침 6시 44분 새벽의 겨울 찬바람이
몹시 거세게 부는 사자산 정상석을 잡는다.
한자 반 정도의 작은 대리석 정상석이 자리한 사자산은 사자의 꼬리부분이고 머리는 장흥읍을 내려다
보며 엎드려 고개를 들고 앉아 있는 모습인데 등줄기를 타고 두봉을 다녀 오기에는 1시간은 족히 걸리는
길이라 접어 두고 왼쪽 바위 암릉으로 이루어진 정맥길로 발길을 튼다.
나무 계단을 밟아 내리며 정맥길은 동쪽으로 머리를 틀고 멀리 이어지는 정맥길 너머로 하늘이 진홍색으로
채색되면서 동이 트기 시작한다. 이렇게 핏빛처럼 진한 색으로 아침을 맞기는 실로 오랜만인 듯 하다.
저녁 노을이 끼면 아침에 비가 오고, 아침 노을이 비치면 맑은 날이 된다는 옛 어른들의 말을 떠 올리며
바닷가 조망은 썩 좋을 것이라 기대를 하면서 고흥 반도 너머로 환해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7시 1분 수북히 갈잎 낙엽이 정맥길을 덮고 있는 휴양림 갈림길을 지나면서 날은 밝았지만 동쪽에 덮인
구름으로 인해 햇볕은 나지 않는다. 561미터의 무명봉을 살짝 타고 넘자 남해 바다 다도해에 떠 있는
섬의 모습들이 망막 속으로 쏟아져 들어 온다.
백두 대간 줄기 영취산에서 분기해서 호남금남정맥을 타고 넘어 또 다시 모래재에서 분기한 호남정맥은
무려 14번의 무박 산행 끝에 남쪽 바다 푸른 물 속에 떠 있는 다도해 모습을 눈 앞에 보여 준다. 우리 한반도의
모습을 호랑이의 모습으로 표현한 민화에 견주어 보면 이 곳은 호랑이의 발톱 끝인 셈이다.
가지만 앙상한 철쭉 사이를 타고 내리는데 왼쪽은 낙엽송만 듬성듬성 남아 있고 잡목은
모두 제거한 채로 편백나무 묘목이 넓게 심어져 있다. 아마 보성군에서 이 지역은 편백
나무 조림사업을 하는 모양이다.
7시 47분 용치로 내리는 갈림길인 골치를 지나지만 거세 바람에 어디 몸을 감추고 아침 식사를
할 곳을 찾기가 마땅치 않다. 잠시 낙엽이 수북한 정맥길의 완만한 오르막을 밟다가 길 왼쪽
으로 살짝 벗어난 묘소를 발견하고 누룽지를 따뜻한 물에 불려 아침식사를 해결한다.
날이 추우니 오래 앉아 있을 생각도 없다. 차라리 움직이는 것이 덜 춥다. 밥 먹는 동안에 손이
꽁꽁 얼었던 탓에 장갑을 껴도 손끝은 끊어질 듯 통증이 밀려 온다. 이런 통증은 산행 시작 후
10여분 지나면 차츰 나아질 것을 산행 경험에서 이미 알고 있지만 다음 산행부터는 지난해 쓰고
남겨둔 핫팩을 집안에서 찾아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간다.
손끝이 시린 것을 참으며 올라 8시 25분 작은 봉을 지나 8시 30분에는 큰봉으로 건너간다.
하늘은 구름이 거의 걷혀 파랗게 물들었고 하늘 한가운데에는 빛을 잃은 하현달이 하얀 얼굴로
내려다 보고 있다. 멀리 지나온 제암산과 사자산의 능선이 한 눈에 잡히고 바로 앞에 이어진
일림산의 부드러운 모습이 철쭉철이었으면 완전히 사람을 홀려낼 정도로 장관일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철쭉가지 사이로 이어진 정맥길을 따라 위에는 키낮은 억새밭으로 민둥산 모습을 하고 있는
커다란 일림산 표지석을 8시 43분에 잡는다. 중심잡기가 힘들 정도로 바람이 부는 산 정상은
키 낮은 억새풀만이 자리잡고 있어 사방으로 보이는 조망은 가히 일품이다. 북쪽으로 멀리
가물가물 보이는 무등산부터 오늘 지나온 제암산 사자산 능선과 굽이쳐 흐르는 호남정맥길과
남해바다 득량만 앞에 떠 있는 섬들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아까운 풍경을 사방으로 셔터를 눌러대며 렌즈 안으로 들여 놓으려 하지만 눈 앞에 펼쳐진
장관에 대한 느낌을 카메라 안으로 밀어 넣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인 듯 싶다. 호남 정맥
중에서 최남단에 위치한 일림산을 뒤로 하고 장흥군과 이별을 고한 후 보성군으로 들어간
정맥길은 방향을 틀어 북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8시 56분 왼쪽 200미터 아래에 있다고 표기된 보성강 발원지 샘터 이정표를 지나 정맥길은 작은
너울로 계속 고도를 낮춰간다. 오른쪽에는 임진란 때 이순신 장군이 드나들어 이름이 지어졌다는
득량만과 함께 남해바다의 모습이 예쁘게 들어와 장거리 산행길의 피로감을 잊게 해준다.
9시 31분 회령리로 내리는 삼거리 이정표를 지난 정맥길은 413봉에서 한치로 가는 직선 산줄기를
버리고 왼쪽으로 급히 내려 삼수 마을로 들어간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니 산꾼들이 다니는 정맥길이
엄격한 마루금과는 약간 틀어져 벗어난 듯 하다.
엄격한 마루금을 찾기 위하여 413봉을 50여미터 정도 직진으로 내려 왼쪽으로 난 희미한 길을 따라
산 속을 더듬는다. 아주 오래전에 이따금 정맥꾼이 지났는지 가끔 리본은 보이지만 이미 길은 찔레
나무로 우거지고 썩은 나무까지 쓰러져 길을 막고 있는 것이 등산로의 기능을 잃고 있는 모습이다.
얼굴까지 긁혀가며 오지 산행을 하듯이 흔적만이 남은 희미한 길을 헤쳐나와 묘지 곁을 지나 폐임도를
따라 내려 10시 3분에 삼수마을 표지석을 지난다.
호남정맥이라 하기도 어려울 만큼 논으로 펼쳐진 평원을 마루금은 지나고 있다. 가만히 살펴보면
그 논의 논두렁을 살펴 보면 마루금을 따라 좌우로 물흐름이 분명하게 구분되고 있음이 보여진다.
마을로 들어가는 시멘트 포장로를 걸어가며 멀리 들을 지나 웅치면 너머로 아득히 멀어진 제암산의
모습을 담은 후 들판에서도 마루금 원칙을 찾으려 10시 14분 오른쪽으로 길을 벗어나 마루금을 향해
보리밭 싹이 파랗게 올라온 밭둑길을 따라 정맥길을 흐른다.
삼수에서 봉산리로 넘는 시멘트 고갯길에서 다시 도로를 버리고 마루금 원칙을 고수하며 벌목을 한 산으로
접어 들어 올라 묘지 앞에서 귤 한개의 간식으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활성산으로 향한다. 그다지 높지
않아 보였던 활성산은 급경사는 아니지만 꾸준하게 오르막 내딛기를 요구하고 있다. 서두를 것 없는 걸음으로
차분히 짚어 11시 10분 활성산 앞 정상에 위치한 묘소 앞에서 잠시 땀을 씻어 낸다.
멀리 봇재 도로가 눈에 들어 온다. 산은 거의 칠부 능선까지 군데군데 파랗게 차 밭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어려서는 보리차만 마셔 보았을 뿐이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커피를 더 친하게 지냈을 뿐 녹차를 접했어도
사람의 입맛을 당길만한 별 독특한 맛도 느낌도 없는 쌉쌀한 맛에 그다지 친해지기는 힘들었다.
사실 내 맘 속에 녹차가 깊숙히 잡리잡기는 해외 파견 근무 6년간 나가 있을 때였다. 석회수의 수질로
인하여 자연수를 먹지 못하는 외국인들은 늘 책상마다 포트를 놓고 차를 끓여 마셨고 나도 그런 차문화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졌다. 우리가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마시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일이다.
삼국사기에 지리산 지역에 재배된 것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차가 들어온 것은
통일 신라 때 이 곳 보성 지역이었던 듯 싶다. 고려시대에 불교와 함께 발전을 했던 차문화는 조선시대
불교의 쇠퇴와 함께 스님들만의 문화로 자취를 감춰 버리고 일제가 지나고 해방이 되어도 가난을 벗어나기
힘든 일반 대중이 차문화라는 것을 인식하고 즐기기에는 호사스러운 생각일 수 밖에 없는 일이다.
근근히 명맥을 이어오던 차는 1980년대가 넘어서면서 경제적인 궁핍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자 때마침
불어오는 웰빙 순풍에 건강 음료로 알려져 급격히 일반화되지만 최근에는 여러가지로 분화된 다른 차들과
함께 인근 밭에서 뿌리는 농약이 차의 잎에서 검출된 것이 보도되는 탓에 차의 소비가 급격히 줄어
들었다고 탄식하는 현지 농민들의 말을 듣는다. 여러가지 차의 등장과 중국산 수입차로 인해
보성 노차의 생산 가격도 그 원가를 맞추기 힘들어 지자체에서 관리하는 다원을 제외하면 수확 때가
되어도 인건비를 줄 수 없어 수확을 포기하고 있다는 말까지 듣는다.
산지 위에까지 온통 파랗게 채색해 놓은 녹차밭 사이를 지나 편안한 능선 길을 흘러 내려 11시 42분
봇재에 내려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 한다. 녹차 다원이 여러개 위치한 봇재 고개에서 내려다 보는 득량만은
온 산을 뒤 덮은 녹차밭과 함께 어우러져 풍광이 매우 아름다운 모습이다. 남해안을 둘러보는 드라이브
코스로도 일품이겠다는 생각을 하며 아쉬움을 몇장의 사진으로 카메라에 담는다.
봇재에서 녹차수제비로 점심을 했지만 수제비의 간이 좀 세고 호남 음식의 맛깔스런 맛을 느끼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후미까지 기다려 오후 3시 30분이 되어서야 차는 서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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