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플루가 온 나라를 휩쓸고 있다.
지난해 멕시코에서 돼지 인플루엔자로 발표되며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신종 인플루엔자는
우리 나라에도 벌써 50여명의 사망자를 내고 하루에 1만여명 가깝게 감염되고 있지만
국가를 책임진다는 위정자들은 민초들에 대한 건강 대책은 뒷전으로 밀어 놓고 4대강
개발을 해야 한다고 목청을 돋구었고, 여야 합의로 법률에 의하여 결정된 세종시 계획을
철회한다고 요즘은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다.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사람들에게 투표를 한 우리의 모습이 부끄럽다.
후에 역사가들이 결과를 놓고 다시 짚어가며 분석하고 평가하겠지만, 지금 내 눈에 비치는
현상은 4대강 개발이라는 것은 3면이 바다인 나라에서 우스꽝스런 운하를 파는 토목공사를
벌여 엄청난 공사의 이권에 모기떼처럼 달라 붙어 빨대를 꼽자는 지금의 기득권 층 생각의
결정체이고,세종시 계획을 수정하겠다는 문제는 매일같이 전철과 도로에서 교통 체증으로
아우성 치는 시민들을 외면하고, 이로인한 엄청난 사회적 손실은 무시한 채로 민초를 다스
려야 하는 대상자로 생각하는 공무원들과 서울에 몇채씩의 부동산 투기를 해놓은 정치적
이익 집단이 자신의 생활 불편과 부동산 가치 하락을 우려해서 벌이는 작태 이상으로는
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진정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꺼이 봉사할 수 있는 지도자는 우리 민족에게는 그렇게도
나타나기 힘든 모양이다. 며칠전 그렇게 말썽이 많던 친일인명사전이 결국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접하며 기쁜 감정보다는 먼저 프랑스 시민들에 대한 부러움이 먼저 떠올랐다.
나치 독일의 치하에서 매국 행위를 한 사람을 모두 정리를 한 프랑스와 일제 치하에서
매국 행위를 한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 계속 기득권층을 형성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그 근본
부터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민주주의의 요원함에 안타까운 마음을 갖는다.
무방비 상태에서 맞은 신종 플루의 절정기에서 연일 늘어나는 사망자 소식을 들으면서
목요일부터 이상해진 몸은 재채기와 함께 목소리가 변하고 콧물이 계속 흘러 주말 산행을
걱정하게 되니 순수해야 할 산행기까지 위정자들에 대한 욕을 잔뜩 발라 놓는 형상이 된다.
토욜 저녁이 되어도 몸은 무겁고 좀처럼 재채기는 끝나지 않는 가운데 지난번도 빠졌으니
산행 취소는 할 수 없어 입맛을 잃은 저녁을 대충 먹고 도시락을 싸서 사당으로 향한다.
주말인 일요일은 남부지방이 하루 종일 비가 내릴 것이라는 뉴스에 지난 주 수원산마루
산우회의 대간 마지막 구간 축하 산행에서 가을비의 추위를 느꼈던 터라 지난번처럼 방수
자켓과 바지로 밀고 갈까 생각을 하다가 남쪽이라 더울 것이고, 땀과 비가 뒤범벅이 되어
안팎으로 젖고, 험한 길에 방수옷이 상처로 손상될 듯하여 우의와 긴 스패츠로 해결하기로
하고 물은 빨대로 1리터 넣어서 가급적이면 배낭을 벗지 않고 산행을 하는 스타일로 비에
대한 대책을 세웠다.
스물댓명정도는 예약이 되어 있었는 듯 한데 취소시킨 인원도 있고 하니 40인승 버스에
20명으로 버스가 텅 비어있다시피 단촐한 채로 출발을 했다. 비가 내린다는 예보와 틀리게
남쪽으로 내려가도 날씨는 꾸물거리기만 할 뿐 잔뜩 습기만 품고 있다. 중간 휴게소에서
승차하는 인원을 태운 버스는 백양사 휴게소까지 쉼없이 달려 새벽시간의 휴식을 취한다.
감기로 인해 입맛도 잃고 햄버거가 딱 좋은데..심야시간이라 패스트푸드는 없다. 편의점으로
들어가 둘러보다가 카스타드 빵을 두상자 12개를 사서 4개는 먹고 8개는 배낭에 넣어 행동식
으로 준비를 한다.
차를 댈 수 있는 중간 기착지가 산행 후 8시간이 지난 웅치가 된다니 도시락을 짊어지고
산행을 해야 하고, 아니면 행동식으로 때우다가 중간 기착지에서 밥을 먹은 후 다시 올라가야
하는데 몸도 좋지 않고 배낭은 최대한 가볍게 하고 행동식으로 밀고 가기로 결심했다.
화순에서 보성으로 향하는 29번 국도가 터널이 뚫려 이제는 옛고개로 인적없는 고갯길이
되어 버린 예제를 향해 버스는 멀미가 날 정도로 급하게 머리를 틀어대며 가쁜 숨을 몰아쉰
후에 통행금지 차단기가 설치된 고갯마루에 새벽 3시 40분에 우리를 내려 놓는다.
화순쪽 아랫마을 이름이 예를 구한다는 求禮里인 것으로 보아 고개이름도 여기에서 따서
예재인 듯 하다. 어제가 입동임에도 지난주 미시령을 경험했던 것에 비하면 남쪽 지방이라
그런지 따뜻하다. 긴팔 티를 입으면서도 어느정도 두께를 입어야 할 지 고민하다가 조금
두꺼운 것으로 입었는데 오늘 산행길에 땀 좀 흘려야 될 듯 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늘을 올려다 보니 별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구름만 끼어 있는데 스무하룻날에 반쪽이
된 하현달만이 창백한 얼굴이 되어 흘러가는 구름 속으로 모습감추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시그널이 어지럽게 붙은 들머리를 찾아 마루금을 짚어 올라 산행을 시작한다.
몇십미터의 고도를 올리던 마루금은 이내 부드러운 능선으로 이어지나 싶더니 한차례의
된비알을 차고 올리며 온 몸으로 새벽 땀을 받게 만든 다음 시리산 정상을 내어 놓는다.
봉화산이란 이름이 동시에 잡혀 있는 것을 보면 땅끝에서 고흥반도에 이르기까지 왜적이
침입하면 한양으로 알리기 위해 광주를 통해 지나는 봉수 길목의 중요한 자리에 위치하여
봉화산이란 별칭이 붙어 있는 듯 하다.
배가 쌀쌀 아파 온다. 잠시 숨을 돌리며 해결을 하기 위해 모두 먼저 보낸 다음 맨 후미에서
혼자 여유롭게 산행을 시작한다. 캄캄한 밤 희미한 능선길을 따라 숲을 헤치며 길을 밟는다.
우거진 숲으로 인해 5분 정도 먼저 간 후미 일행도 전혀 보이지 않으니 캄캄한 밤에 혼자
산행을 하는 느낌이 든다.
나는 유유자적하는 혼자의 산행을 참 좋아 한다. 마음 맞는 사람과 둘이 함께 하면 금상
첨화로 산행의 기쁨이 배가 되지만 그렇게 산행할 수 있는 기회가 그리 흔치는 않다.
혼자 여유로운만큼 산행을 하면 느낌이 많게 되고, 그 느낌 하나하나를 온전히 감상을
하고, 가슴에 담을 수 있고, 만일 맘이 통하는 사람과 함께 하면 느낌에 대하여 이야기까지
나눌 수 있으니 그보다 더 좋은 산행이 어디 있을까.
사람이 많이 몰려 다니면 나는 곧 산행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단순한 노동이 되는 듯한
기분이 들어 가면서 산행에 대한 만족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운동을 위한 산행이지만
어쩌면 운동보다도 그 속에서 더 많은 마음과 정신의 에너지를 얻고 싶어하는 욕심이
있어서인지 정맥길 산행에서도 일행이 많아도 산행 중에는 혼자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길눈이 밝고 방향 감각이 있어서인지 어두운 밤이라도 나는 길은 거의 잃지 않는다.
이따금 흩뿌려대며 오가는 새벽비가 수북하게 쌓인 상수리나무 낙엽을 적셔 놓고, 사람이
다닌 흔적조차 없는 정맥길을 헤드 랜턴에 의지해서 여기저기 비추며 마루금을 찾아 흘러간다.
길을 잃지 않는 방법의 핵심은 늘 머릿 속에 마루금 능선을 인식하는 것이다. 좌우로는
언제나 내리막 경사이고 능선 등을 타고 있음을 잃지 않으면서, 날개로 갈라져 나가는 다른
능선의 형태를 눈여겨 보면서 지도를 머릿 속에 담고 있어야 실수를 하지 않는다.
또한 발 밑이나 좌우를 늘 살피며 걸어야 선답자들이 남겨 놓은 표식을 찾아내고 길을
잃지 않는다. 혼선이 있는 길목에는 선답자들이 반드시 흔적을 만들어 놓았으므로 눈 여겨
살피면 엉뚱한 길로 들어서지 않는다.
몇십미터의 약한 너울 3개를 오르내리며 급경사로 바짝내리던 길은 고개의 흔적도 남지
않고 풀숲 임도만 어설프게 남은 가위재를 지나 몇십미터의 고도를 들어 올려 마루금까지
올라와 있는 묘지 뒷쪽으로 흘러 들어가 코앞으로 된비알을 들이대고 바짝 고도를 높인 끝에
5시 27분 고비산에 오르니 후미 일행이 기다리고 있다.
잠시 숨을 돌린 후 후미와 함께 출발을 하지만 근육통으로 다리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고 허리는
끊어질 듯 아파 오니 함께 움직이기가 쉽지 않아 먼저 보내고 또 혼자 움직인다. 마루금의 고도가
낮아지면 좌우측으로 마을 불빛이 깜박이고, 고도가 높아지면 이내 운무에 휩싸여 사방 불빛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랜턴 불빛에 의지해서 등산화의 등을 덮는 수북한 낙엽을 밟으며 낙엽 빝에
잔돌로 인해 부상을 당하지 않을까 조심하며 움직인다.
작은 너울로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흘러 5시 43분 덕암산을 지나고, 좌우로 10미터 정도가
벌목된 방화선이 나타난다. 허리가 아파 잠시 누워서 허리를 진정시킨 후 어슴프레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길을 방화선을 따라 환히 벌목된 부드러운 능선으로 오르 내리며 6시 36분에
풀섶 임도가 지나는 큰덕골재에 내린다.
임도 곁에는 부호군 죽산안공 묘소로 들어가는 이정표 비석이 있다. 부호군이면 조선시대
무관으로 5위 소속의 종4품 벼슬인데 조선 후기로 가면서 적당한 직책을 주지 못하는 문무관에게
명예직으로 많이 남발했던 벼슬 명칭이다. 역사에 별 흔적없이 살다 떠나 갔어도 이름 몇자를
새겨 남기고 싶은 인간의 기본 욕망을 보는 듯 하다. 지금으로 치면 장군은 안되고 대령 정도
직급의 명예직으로 봐야 할까?
세상 떠나가면 그 뿐..
육체는 흙이 되고..영혼은 한 줌의 바람 속으로 흩어질 일..
무엇에 미련이 남아..
이름 석자에 목말라 돌에 새겨 넣는가~
산경표에 따라 이 나라의 대간과 정맥의 마루금을 밟아 가면서 내 자신의 느낌을 상세히 적어
남겨보려는 욕심을 가진 나도 결국 어찌 보면 또 다른 슬픈 인생이라는 생각을 하며 묘비
왼쪽을 따라 산으로 오르는 임도를 따라 정맥길을 잇는다. 임도 끝에는 묘소가 있으면 언제 때
부호군 벼슬인가 살펴 보려 했는데 묘소는 보이지 않고 임도가 끝나고 바로 산길로 이어진다.
살짝 안부로 올라서니 새벽이 밝아 오면서 먼 곳까지 윤곽이 잡혀 들어 온다. 마루금까지 올라와
앉아 있는 묘소 2기의 뒷쪽으로 흘러 이제는 아침이 된 마루금을 상수리잎을 밟으며 걷는다.
이따금 빗방울이 후두둑거리며 발 밑에 상수리 잎을 때리고 지나가지만 비는 내리지 않고 구름이
지나며 뿌려 놓은 비의 흔적만 낙엽을 적셔 놓았다.
몇개의 너울을 출렁거림으로 넘던 마루금은 사람들이 넘나드는 소로길 고개인듯한 골짜기를
지나 바짝 틀어 올리기 시작해 감기에 지쳐가는 몸이 거의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지쳐갈 무렵인
7시 48분에 군치산에 오른다. 산의 이름만 있을 뿐 제대로 된 정상석 하나 없이 산봉우리마다
철판으로 산이름을 만들어 나무에 걸어 놓은 것이 전부다. 이 산에 누가 등산을 오겠는가,
마을 주민이나 도토리나 고사리 약초 산나물 채취를 위해 올라 오지 않으면 정맥꾼 외에는
이 산을 지날 사람이 있을 턱이 없다. 그나마 지방 자치단체가 중요한 고갯마루마다 호남 정맥
이정표 정도만 세워 준 것도 감사해야 할 일이다.
군치산에 머물던 후미 일행을 먼저 보내고, 천천히 발길을 잇는다. 군치산에서 내려서면 떼재로
표기되어 있다. 떼재라면 무리를 이룬 고개라니 이름에 깃든 무슨 사연이라도 있을 듯한데 고개의
흔적은 발견하기 힘들다. 떼재에 있는 산이란 이름으로 산이름도 군치산이 된 모양이다.
갈수록 후미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발걸음은 늦어지고 허리의 고통은 더욱 심해지니 30분
간격으로 바닥에 누워 허리를 진정시킨 후 또 다시 일어나 걷는다. 배까지 고파오면서 떨어진
체력을 보충하려 카스타드를 꺼내 먹지만 제대로 기력 보충도 되지 않는다.
산행을 하면서 이렇게 허리가 아파 힘들어 보기는 처음이다.
웅치 이 후 3시간을 더 가야 하니 아무리 선두가 빨라도 오후 1시는 넘어야 목적지에 도착하니까
탈출을 위해 웅치까지 12시를 도착시간으로 잡아도 충분히 여유롭다는 생각을 하며 발걸음의
속도를 조금 더 늦추기 시작한다. 심하게 무리를 했다가 몸을 많이 상하게 되면 다음 주 내내
병원 신세와 함께 문제가 더 커질까 걱정스럽기도 하고 산행에 대한 무리한 욕심이 요즘은 많이
줄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몇번의 작은 너울을 출렁거리던 마루금은 또 다시 몸을 일으켜 9시 25분 숫개봉에 오른다. 이름도
특이한 숫개봉은 지도에도 한글로 써져 있으니 그 이름의 근원을 짐작하기가 불가능한데 한글
발음으로는 수캐가 연상되는 특이한 봉우리 이름으로 입가에 웃음을 머물게 만든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사과 한개를 들고 먹으면서 잔돌 위로 쌓여진 낙엽을 밟으며 급경사로
고도를 한없이 내려가던 길은 소로길 흔적의 안부를 지나 다시 치고 올라 몇십미터 고도를
올리더니, 아프고 지친 몸에는 더욱 새카만 높이로 보이는 구름에 싸인 봉미산을 두고 마루금
길은 또 하염없이 내리막길로 급경사를 내린다.
이미 습관화된 일들이지만 앞에 넘어야할 산을 바라보며 내리막길을 밟는 기분은 그다지 즐겁지는
않다. 특히 몸이 지쳐 있을 때는 얼마나 더 내려가서 저산으로 붙을까 하는 생각이 가득하고 조금
덜 내려가서 붙어주기를 마음 속으로 간절히 염원할 때도 있다.
10시가 되어 지도에는 임도가 올라오는 것으로 나타나 있는 제법 넓직한 안부를 지나 봉미산을 향해
마루금은 급격히 고도를 올리기 시작한다. 지친 몸에 보폭을 줄이고 한걸음 한걸음 옮기며 고도를
높여 가며 뒷 쪽을 이따금 되돌아 바라 보지만 평소 같으면 뛰어 올라와도 될만한 별 것 아닌 길이다.
100여미터의 고도를 올린 끝에 전위봉 헬기장에 10시 28분에 도착해 그 자리에 누워 버린다.
카스타드 2개를 꺼내 먹고 쉬었다가 능선을 따라 봉미산으로 발걸음을 옮겨 10시 42분에 봉미산
정상을 밟는다. 이제는 내리막 길만 내려 가면 힘들고 고통스런 산행은 끝이다.
선두는 웅치를 지나 건너편 산으로 이미 붙었을 것이지만 산행 종료까지는 멀었겠고 후미는 웅치에
이제 도착할 정도의 시간이 되었겠다는 생각을 하며, 봉미산 정상 헬기장에서 누워 여유로운
휴식시간을 혼자 즐긴다.
이따금 급경사 내리막이 섞여 있기는 하지만 부드러운 마루금을 따라 흘러 내리면서 오늘 가지 못할
고개 건너편 마루금을 아쉬움으로 바라보면서 여유롭게 11시 15분에 웅치에 내려 산행을 마감한다.
고개 너머 웅치 휴게소로 넘어가 화장실에서 대충 몸을 씻은 후 대기중인 버스에서 옷을 갈아입고
버스와 함께 장구목재 어프로치가 있는 마을로 들어가 함께한 일행을 기다린다.
차례로 내려오는 일행들을 맞으며, 라면을 끓여 먹고 쉬었다가. 후미가 도착한 후 오후 3시가 넘어
출발을 하고 식당에 들렀다가 추적추적 내리는 빗길에 차량 정체로 밀린 고속도로를 따라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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