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호남정맥산행기

호남 10(둔병재--별산-묘치-천운산-돗재)

만석공원 2009. 10. 19. 20:43

버스는 인적 하나 없이 캄캄한 팔월 그믐날 새벽 3 : 35분 화순군 이서면에서 화순읍으로 들어가는

둔병재 마루턱의 안양산 자연 휴양림에 우리를 쏟아 놓는다. 새벽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샀던 두개의

햄버거 중에서 하나를 꺼내 입 안에 우물거리며 새벽잠을 털어내고 남은 하나는 산행 중 먹을 생각으로

배낭 속에 넣는다.

 

정신을 가다듬고 산행 준비를 하여 버스에서 내리니 첩첩 산중 빠끔한 하늘위로 별만 총총히 빛나고

새벽 공기만이 차갑게 피부에 파고들며 가을이 깊어가는 것을 알린다.

 

군사을 숨겨두기에는 적합하게 둘러친 자리.

얼마나 많은 민초들이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손에 잡기도 서툰 창칼을 들고 저항하다 스러졌을까!

화순을 거쳐 광주로 들어오는 왜군의 진로를 막으려 했었음직한 고개의 이름은 둔병재로 되어 몇백년

전의 일을 되새기며 기억하게 만든다.

 

늘 역사를 만들어 내는 이 땅.

엊그제처럼 생생한 1980년 봄의 함성 광주 민주화 운동도..

임란이 있기 몇해 전 동인들을 초토화시키며 1000여명이 삭탈관직 유배 처형을 당했던 기축옥사의

중심에 서 있던 정여립 사건도..

호남은 늘 역사의 선구에 우뚝 서 있는 모습이다.

 

이 땅은 왕의 땅도 아니며 누구도 주인이 될 수 없다던 천하공물설을 주장했던 정여립.

지금으로 보면 당연하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당시로서는 누구도 상상도 할 수 없고 입밖에 내지도 못할

사상을 가졌던 정여립. 합리적이고 정확히 맞는 봉건 사회에서 용납할 수 없는 사상으로 인해 그는 스스로

생을 마감해야 했다.

 

민초들의 삶을 위해 고뇌하다가 억울하게 자신의 생을 마감해야 했던 선각자 지식인들의 피가 흐르는

호남의 발자국을 오늘도 따라 걷는다.

 

피톤치드가 일반 침엽수보다 5배나 많다는 편백나무 숲이 조림되어 있는 안양산 자연 휴양림.

낮에는 입장료를 받지만 한밤에는 사람이 있을 리 없고 문도 열려 있다. 휴양림 관리 사무소 안으로

들어가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계단을 올라 고개를 가로지르는 출렁다리를 건너 편백나무 숲으로

들어가니 새벽 공기에 실린 피톤치드가 가슴 속까지 파고 들어오는 듯 공기의 맛이 아주 상큼하다.

 

넓직한 산책로를 따르던 길은 마루금을 향해 우측으로 급경사 산행로를 따라 산으로 오르고

산책 방문객들을 위한 팔각정을 지나 마루금은 계속 고도를 높여가다가 632 무명봉을 넘어

흐르던 길은 능선을 따라 부드럽게 흘러 내리다가 4시 25분 갈두리로 내리는 임도를 만난다.

 

왼쪽 갈두리 방향으로 20여미터 남짓 임도를 따라 내리다가 정맥 마루금은 오른쪽을 향해

급히 산속으로 이어진다. 싸리나무와 진달래 철쭉에 가시가 있는 찔레나무까지 섞인 잡목은

정맥길에서 온몸으로 저항하며 찔러 대고, 인적이 드물어 길조차 희미한 정맥길은 웃자란

억새풀까지 막아 랜턴으로 길을 찾기 위해 몇번씩 발걸음을 멈추고 둘러보게 만든다.

 

4시 40분 얕으막한 능선을 헤치고 만지맥(蔓芝?: 맥자가 컴터 사용 표준에 없음  뜻이 동일한

유사글자는 脈)이란 비석이 서 있는 화순읍으로 들어가는 897번 도로로 내려선다.

어찌나 숲이 무성하면 덩굴풀이 엉켜 있다는 뜻의 저런 비석이 서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마을길 도로에 내려서서 짐짓 위아래 옷을 털어내고 등산화도 탁탁 털어 본다.

  

897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어림고개마루에는 작은 돌탑 몇개와 동면이라는 도로표지판만 지키고

서 있다. 고개를 가로질러 다시 올린 마루금은 별이 점차 빛을 잃어가고 마루금의 방향이 동쪽으로

흐르는지 앞쪽은 주황색으로 하늘이 예쁘게 채색되기 시작하고 먼 곳까지 조망이 되기 시작하는 

무렵에 몇개의 거친 바위들을 넘어 5시 26분에 표지석 하나없는 거친 방위 봉우리로 만들어진

별산을 내 놓는다.

 

지도에 따라 오산이라고도 오기된 별산은 자라별(鱉)자이지만 잘못표기되어 자라(鰲)자로도

읽는 모양이다. 별산이건 오산이건 그냥 한글로 자라산이라 하면 될일을 오산이 맞니 별산이 맞니

지도에는 두가지 이름이 혼용되어 표기되어 있기도 하는 것이 오히려 씁쓸한 느낌이 든다.

 

어디의 어느 모양이 자라 모양이라 자라산인지 둘러볼 여유도 없이 골짜기로부터 산마루를 타고

넘는 바람이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의 체온을 급격히 떨어뜨리니 제자리에 서 있는 것이 오히려

고역스런 계절이 되었다. 한번 사방을 둘러본 후 발을 옮긴다. 왼편으로 동복호가 넓게 펼쳐

보여야 하는데 이른 가을의 숲길은 좌우의 조망을 주지 않는다. 6시 4분 593봉 삼각점을 지나

6시 41분 화순 적벽으로 들어가는 삼거리 15번 국도가 지나는 묘치에 내린다.

 

여기까지가 여수 외망포구까지 흘러가는 호남정맥의 절반이라는 안내가 있었으니 이제 호남정맥도

절반을 꺽어 후반으로 들어서게 된다.

 

산행버스가 구석에 대기하고 있으니 배낭 무게를 줄이기 위해 버스에 두고 내린 도시락을 꺼내 길가에

앉아 아침을 먹는다. 보온박스 안에 보온 도시락으로 밥을 싸왔으니 아침이 되도록 밥은 따뜻해 식사가 

한결 부드럽다. 물을 보충한다음 철책이 끝나는 고개 우측 끝 전주를 끼고 올라 마루금을 더듬어 오른다.

 

왼쪽은 화순군 동북면 경계선을 안고 따라 흘러간다.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꼬여버린 인생에 따라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하고 덧없이

살다간 선인들을 접할 때는 가슴 한 켠이 아릿하다.

 

이런 저런 불우했던 인생을 흘러간 선인들도 많지만 독보적 존재로서의 김삿갓의 무게를 덜어내기는 

어렵다.

 

안동김씨에 의해 부패가 극에 달해 홍경래의 난 이 일어난 순조 시절..반란군에 항복한 김익순의 손자인

김삿갓은 할아버지가 처형되고 아버지마저 일찍 죽고 어머니의 손에 의해 아무 것도 모르고 영월 땅에서

가난하게 자라지만 총명한 머리는 속일 수 없었던지 과거시험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할아버지 김익순의

역적죄를 논하는 글로 장원 급제를 하였지만, 김익순이 자신의 할아버지임을 전해 듣고 집을 나가게 된다.

 

평생 부패한 사회에 대한 풍자 해학시를 남기며 유랑하며 지낸 김삿갓은 이 곳 화순 땅 동북면에서 영면의

휴식을 취했다.

 

기구한 운명으로 인생을 방황하며 지냈을 김삿갓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당시에 관복을 입었어도 

부패한 조정에서 탐관오리 외에는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을 일이고 보면 방랑생활에 후세에 길이 남는 

시를 통해 더욱 의미있는 흔적을 남겼다는 생각이 들어간다.

 

이미 고갯마루에는 어느새 아침 해가 한뼘은 올라왔고 주라치 고개를 지나 마루금을 흘러

8시 27분 표지석도 없는 천왕산에 닿는다. 급경사를 틀어 내렸다가 임도를 가로질러 올라간

마루금은 통신중계기탑으로 향하는 시멘트 임도를 따라 걸어 9시 4분 통신 중계탑을 지난다.

 

가을 햇살에 지나온 마루금을 이따금 돌아보니 멀리 아득히 지나온 무등산과 백마능선이

시야에 잡혀 들어온다. 지난 길을 바라보며 내 인생도 돌아 본다. 출렁이는 마루금과 굽이쳐

흘러 내리는 계곡 사이 사이로 역사를 만들어간 선인들의 숨결이 가득차 있는 듯 하다.

먼 훗날 내 인생의 흔적은 어느 계곡에 숨결로 남아 있을까.

 

이어진 임도는 계곡으로부터 마루금까지 조성된 밤나무 과수원을 지난다. 길에 떨어진

굵직한 밤이 수확도 하지 않고 나뒹굴고 있다. 밤이 풍년이라 수확을 해도 인건비조차

건지지 못하니 밤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모양이다.

 

밤 한톨을 주워 껍질을 벗겨 우물거리며 마루금을 따라 만들어진 임도를 따라 흐르다가 

고갯마루에서 오른쪽으로 급히 내려 9시 40분 15번 국도가 지나는 서밧재에 도착한다.

 

15번 국도는 자동차 전용도로로 중앙분리대까지 설치되어 차량이 고속 질주를 하고 있어 자칫

조심하지 않으면 매우 위험하다. 차량 통행이 한가한 틈을 타서 길을 가로질러 묘 사이로 풀숲을

헤치며 올라 9시 55분에 광주시 학생 교육원 뒷쪽 산책로 길로 들어선다. 차량 통행이 될 정도로

잘 만들어진 산책로를 버리고 마루금은 바로 천운산을 향해 오르막 소로길로 되어 있다.

 

급경사는 아니지만 먼 길은 꾸준히 오르막을 앞에 놓고 이미 체력이 많이 소진되어 있는 몸이

발걸음을 더디게 붙잡는다. 11시에 천운산 2봉 삼거리를 지나 11시 30분 통신 중계탑이

서 있는 천운산 정상에 닿는다.

 

왼쪽으로 틀어진 정맥 마루금을 따라 흘러 내려 11시 48분 한천 휴양림으로 바로 내리는  안부를

지나 512봉을 넘어 12시 22분 주차장이 있는 돗재에 내려 오늘의 산행을 마감한다.

 

돗재는 옛날에는 산골 중에서서 깊은 산골이었던 모양이다.

도드람산이 돼지울음산 저명산에서 이름했다고 전하듯이 돗재도 돼지고개라는 豚峙가 변해서

되었다고 하는데 깊은 산골이니 멧돼지뿐 아니라 옛날에는 더 큰 산짐승들도 살았으리라는 것을

짐작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몸을 씻고 라면을 끓여 먹는 동안 한대의 차량도 지나지 않는 한적한 돗재 고개에는 1967년 새마을

운동으로 새로 길을 내고 만들었다는 공사 표지판이 외롭게 지키고 서서 이따금 지나는 정맥꾼과

한천 휴양림과 천운산으로 놀러온 산객들을 반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