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호남정맥산행기

호남 6(감상굴재-밀재-추월산-천치재)

만석공원 2009. 8. 3. 12:00

 

일자 : 2009.8. 2 (무박)

구간 : 감상굴재-밀재-추월산-천치재

실거리 21.6 Km  (누적거리 : 141.8 Km )

시간 : 9시간 6분

 

 

천간상으로 하지를 지나 세번째 경(庚)일부터 열흘 간격으로 있는 삼복은 말복이 지나야 더위가 한풀꺾일 듯 한데 올해는 말복은 입추 뒤에 있어야한다는 원칙 때문에 중복과 말복이 20일로 벌어지는 월복까지 되어 기분 상으로도 더위를 꺽어버리는 말복은 뒷쪽으로 쭉 물러서고 찜통의 더위 속에서 산행을 떠난다.

 

새벽 1시가 되어도 고속도로는 차량 행렬로 가득 차 있다.

휴가를 즐기러 떠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도로로 뛰쳐 나온 듯 주말에도 밀리지 않던 천안 농산 민자 고속도로도 톨게이트 앞 수키로 앞에서부터 버스는 이따금 타이어를 몇바퀴 굴려보는 것으로 내려가고 있다는 표시를 내고 있을 뿐이었다.

 

산행 들머리는 점점 밑으로 내려가는데 들머리에 너무 늦게 대면 한낮의 더위에 완전히 지치는 것은 아닐까  고민도 하면서 여산 휴게소에서 라면으로 속을 채운다. 몇번의 시행 착오 끝에 정맥 무박 산행 때에는 저녁을 일찍 조금 먹고 차라리 휴게소에서 야식을 먹는 것이 산행에 더 도움이 되는 것으로 판단을 했기 때문에 이번부터 바로 실천에 들어 간다.

  

다른 때와 달리 북적거리는 휴게소는 대낮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심야 고속버스와 승용차들로 휴게소는 가득차 있는데 산행 차림은 우리 밖에 없으니 다른 사람들이 보면 이런 지는 더위에 산을 향하는 우리가 아주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비쳐질 듯 하다.

 

45인승 버스에 사람은 스물일곱이니 널찍한 자리에 차량은 에어컨이 얼마나 추운지 팔토시를 하고 움츠린 채 꾸벅거리며 졸고 있는 사이 장맛비로 인해 아수라장이 되다시피했던 감상굴재에 3시 20분에 도착한다. 산행을 지체할 특별한 이유가 없으니 차를 내리면서 준비를 마치고 바로 줄지어 임도를 따라 정맥길을 찾아 들어간다.

 

구름이 낀 후덥지근한 날씨는 별빛을 보여주지 않고 랜턴이 나가는 정도의 근거리 조망 정도만 허용하고 있는데 이 정도만 되어도 산행에는 별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사방을 둘러보니 우리를 태우고 온 버스가 혼자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는 모습이 잠시 눈길을 잡는다.

 

되돌릴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의미. 이 길이 잘못되었어도 내가 이길을 따를만한 체력이 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돌이킬 수 없는 곳에 내가 서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인생은 하나하나가 비가역적인 행위의 연속이다. 아니 시간이라는 것은 비가역이라기 보다는 어떠한 경우에도 가역이될 수 없는 불가역적이라는 표현이 더 맞다.

 

인생에 있어 지금 지나간 모든 순간들은 잘못된 판단임을 알고 돌아서려 해도 시간은 앞으로만 초침을 돌리고 있으니 원인 무효라는 행위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문득 소년시절 선생님이 칠판에 써주었던 주자의 권학편 글귀가 머릿 속을 맴돌다 나간다.

 

少年易老學難成 소년이론학난성

一寸光陰不可輕 일촌광음불가경

未覺池塘春草夢 미각지당춘초몽

階前梧葉已秋聲 계전오엽이추성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가 어려우니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도 가벼이 여기지 마라.

연못가의 봄풀이 꿈에서 깨기도 전에

섬돌앞에 오동나무 잎은 벌써 가을소리를 들려준다.

 

곧은 바늘로 세월을 낚던 태공망은 팔십에 주무왕을 도와 주나라의 기틀을 잡고  국가 권력의 소용돌이에서 쫓겨난 진문공은 평생동안 거지 행색으로 천하를 떠돌다가 62세에 기틀을 잡아 춘추오패가 되었는데 어느새 귀밑머리의 색이 하얗게 바래지고 머리카락은 하나하나 가을 낙엽처럼 떠나고 있는 지금의 나는 세상에 들어왔다가 흘러가는 의미가 무엇일까.

 

젊은시절의 봄풀같이 청초했던 꿈은 이미 가을철 오동나무잎처럼 말라버린 것인가. 현재가 쌓여 미래의 방향을 만들고 현재가 지난 흔적이 과거를 만들고 있는 것이니 현재의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는 하나하나의 생각과 행동만이 의미있는 과거와 미래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노자는 배움에 게을리 하지 말라는 권학의 이야기지만 어찌 배움이 문자 몇개 글귀 몇개 뿐이랴. 세상을 살면서 매순간 소홀함이 없이 자신을 깨우쳐 가라는 노자의 한귀절은 지천명을 넘어가면서 또다른 모습으로 가슴에 들어와 앉는다.

 

임도를 타고 들어가던 길은 생각없이 밭을 타고 넘어가다가 주춤거린다. 이제는 마루금이 아니라는 생각은 날이 어두워도 육감으로 느낄 때가 많다. 왼쪽으로 산을 올라야되는데 계속 흘러가면 안될 일이다. 잘못을 알았을 때 머뭇거리지 말고 빨리 돌리는 것은 산행이나 인간사나 가장 소모를 줄일 수 있는 지름길이다.

 

뒤로 돌려 산밑으로 랜턴을 비춰가다가 산 밑에 정맥 리본을 발견하고 풀밭으로 들어갈 길을 찾는다. 내가 먼저 길을 발견하고 풀밭을 헤쳐 대각산을 향해 오르막길을 밟는다. 비가 내린 후에는 아무도 이 산길을 밟은 흔적이 없고 끊어질 듯 이어지는 정맥길은 이다금 랜턴으로 주변을 돌아보게 만들면서 산 정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고도를 250m는 올릴것을 알고 있었기에 한차례를 땀이 배도록 바짝 올려 산마루에 올랐는데 산정상 표지가 없이 마루금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살짝 출렁거리는 능선길을 만들고 가다가 3시 47분에 나뭇가지에 표지 코팅지만 걸린 정상석도 없는 대각산에 닿는다. 한장의 증명만을 남기고 아침 이슬을 잔뜩 머금은 풀숲을 이리저리 헤치며 어둠 속에 길을 찾아 내려오다가 선두를 GPS를 가진 출발님을 앞세워 길을 내려 4시 8분 칠립마을 뒤쪽의 칠립재에 닿는다.

 

마루금은 시멘트로 포장된 논 가운데 농로로 이어진다. 논에 관정을 박아 논에 물을 대고 있기 때문에 논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던 웅덩이가 없어진지 오래인데 이 곳에서 웅덩이의 모습을 보니 불현듯 어린시절 생각이 난다.

 

그 때 날씨가 참 가물었다. 그래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던 좋은 논이었는데 하늘만 바라보는 천수답 뿐만 아니라 웬만한 논은 모두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다. 하지 전에 모는 심어야 소출을 바라볼 수 있을텐데 하늘은 따가운 햇볕만 내리쬐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매일같이 하루종일 사각형 양철 바스켓 양쪽에 끈을 달아 웅덩이에서 물을 퍼올려 논으로 보내는 타레박으로 힘들여 물을 퍼내지만 논바닥도 적시지 못할 물은 이내 흐르다가 거북등 사이로 자취를 감춰 버린다.

 

우공이산

우공이 지게로 져서 산을 옮긴다는 우직함처럼 가난한 농군에게는 하늘이 비를 내려주지 않을 때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오직 마을의 최고 부잣집만이 커다란 방죽에서 발동기를 돌려 자신의 논에 물을 대고 있는 발동기 돌아가는 소리만이 땡볕에 지친 가난한 농군의 힘을 더욱 빼 놓고, 그렇게 지친 아버지는 내리쬐던 햇볕만 바라보며 애꿎은 담배만 태우시곤 하셨다. 짐승처럼 이런저런 풀뿌리를 캐먹고 살지 않는 인간으로서 생존한다는 것은 결코 녹녹한 일이 아니다. 아버지는 별로 탐탁치 않던 농사일인데다가 이 후로는 거의 농사일에 희망을 접어버리신 듯 새로운 직업을 찾겠다고 서울로 떠나시고 어머니가 노모를 모시면서 아이들을 기르는 힘든 길로 접어 드셨다. 요즘 같으면 수용을 못할 일이지만 어머니는 아버지가 집을 비운 동안에도 꿋꿋하게 혼자서 논일이며 밭일이며 해나가셨다. 국민학교에 다니는 장남인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이들이나 봐 주든지 소나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풀을 뜯기는 일과 알량한 꼴베기나 심부름 땔나무 정도일 뿐 어머니는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머리에는 투구처럼 수건을 동여매고 허리춤에는 칼처럼 언제나 호미가 매여 있었다.

 

중학교시절 미아리 산동네에서 무허가 판자집 서울생활을 시작하고도 우리집 경제 형편은 피어나지를 않았다. 철거를 당하고 이리저리 쫓겨다니고 가난의 설움을 뼛 속까지 배이도록 내가 대학을 마칠 때까지도 여전히 남의 집 문간방을 벗어나지 못하다가 지 좋은 세상을 보지도 못하고 평생 속이 쓰려 고생이 많으시던 아버지는 위암으로 수술을 한지 3년만에 결국은 전이된 간암으로 55세에 세상을 떠나셨다.

 

어떻게 이런 마루금까지 논농사를 지을만큼 물이 풍부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시원한 새벽바람을 맞으며 시멘트 농로를 지나 어슴프레 보이는 밭둑길로 접어 들어 마루금을 대충 감잡아 올라간다. 느낌에는 분명히 밭둑으로 올라가는 것이 맞는데 밭이 끝나자 산머리에서 갑자기 길이 없어졌다. 산꾼들이 다니는 길은 밭 우측 끝머리로 들머리를 잡아 놓은 모양인데 이따금 농지로 인해 정확한 마루금을 밟아가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산 속에서 잠시 오지 산행으로 우측으로 움직여 길을 찾아 50여미터를 차고 올라 부드러운 능선 풀밭을 헤치며 지난다.

 

시간은 새벽 4시반이 되어도 왼쪽 아래 마을 불및만 상수리나무 사이로 간간히 들어올 뿐 아침이 밝아오지 않는 것을 보면 하지 때보다 날은 두뼘 이상은 짧아진 듯 하다. 날이 밝지 않은 새벽 운무 속에 소쩍새만이 조용한 산중의 방해꾼을 향해 이따금 울어댈 때 몇백년은 되었음직한 커다란 느티나무가 마을을 수호하고 있는 어은리 뒷 고갯마루에 4시 58분에 지난다.

 

농로를 따라 잠시 걷다가 우측으로 들어선 길은 몇십미터의 고도를 올려 금속 삼각점이 길에 박혀 있는 있는 도장봉을 5시 9분에 지나  능선을 따라 약간의 출렁거림으로 옆의 봉우리로 건너가니 이곳이 3군봉이지만 표지가 없다. 구봉님은 정맥꾼들이 여기가 어딘지 생각없이 움직이기만 한다고 하면서 표지조차없는 밋밋한 숲과 같은 3군봉에서 장성군과 담양군의 경계선 순창군의 경계선이라는 설명을 하신다.

 

길은 왼쪽으로 틀어내려 나무에 표지만 걸린 분덕재를 5시 18분에 지나는데 그리 낮은 고개도 아닌데 재로 표시되어 있는 것이 의아했는데 나중에 지도를 자세히 살피니 대흥리와 어은리를 이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길은 이 마루금 능선을 넘는 방법 외에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정맥길은  날이 밝아 오면서 고도를 서서히 올리며 526봉을 지나 꺽어내려 오다가 경주 최씨 묘소를 지나 6시 11분 당산나무가 버티고 있는 안부를 지나지만  아무 표지가 없다. 한장의 증명만을 남긴 후 안부를 가로 질러 부드러운 출렁거림으로 흐르던 길은 고도를 올려 가스에 싸여 희미한 모습으로 추월산 방향의 마루금을 보여준다.

 

급경사를 타고 내리던 길은 7시 1분에 항목탕재 이정표를 보이고 7시 9분에 밀재 고갯마루에 내린다.

지도상으로는 당산나무가 있던 곳이 항목탕재가 맞는데 아무래도 이정표를 잘못 세워 놓은 듯 하다.

 

밀재에는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도시락과 후반기 움직임을 위해 두었던 간식을 차에서 내려 도시락을 먹고 물을 마시고 복숭아 반개를 먹어 체력을 비축한다.

 

옷을 땀으로 바지가 반이상이 젖어 비에 맞은 모습으로 7시 46분에 추월산을 향해 발을 딛는다. 부드럽게 오르던 능선길은 가파르게 변한 모습으로 치고 올렸다가 오른쪽으로 능선을 흘러 암봉을 짚고 올라 환한 조망으로 8시 36분에 731M의 추월산 정상 이정표를 눈 앞에 세워 놓는다. 앞쪽 조망은 되지 않고 지나온 길의 전위봉 조망과 함께 골짜기를 타고 넘는 구름이 조망될 뿐 먼 곳의 조망은 가스에 싸여 희미하다.

 

한장의 증명을 남긴 후 능선을 따라 내렸다가 일반산행으로 많이 올라오는 보리암 분기점을 8시 42분에 지나

오른쪽 월계리 방향으로 마루금을 이어간다.

 

오른쪽 아래로 담양호의 조망이 이 좋을 듯한데 운무에 가득한 날씨와 마루금의 상수리 나무로 인해 조망은 되지 않고 이따금 나타나는 암봉으로 올라가 내려 보지만 시야가 흐릿하게 되어 건너편 강천산도 희미한 모습으로 보인다.

 

월계로 내리는 이정표와 고도를 100여미터를 오르내리는 봉우리 한개를 더 지나고 두번째 커다란 암봉으로 우뚝선 723M의 수리봉에 9시 37분에 닿는다.

 

앞에서 보던 것과는 다르게 담양호의 끝부분이 보이는 것 외에는 골짜기의 마을만 눈에 잡힐 뿐 먼조망을 주지 않는 날씨로 인해 땀으로 목욕을 하는 것에 비해 조망에 대한 화려한 기쁨은 접을 수 밖에 없다.

 

능선을 따라 약간의 출렁거림으로 9시 44분 복리암 정상을 지나 급경사를 내렸던 길은 견양마을 뒷산을 향해 가파른 오르막으로 한낮을 향해 햇볕이 간간히 드는 무더운 날씨에 숨을 턱 밑으로 몰아세워 댄다.

능선길에 올라서서 땀이 식도록 긴 휴식을 취한 후 10시 30분에 견양동 줄기 뒷산 정상을 지나 내려 10시 37분 심적산 삼거리에서 연수원 공사중이라 입산금지 밧줄을 들치고 오른쪽으로 정맥길을 따라 내린다.

 

 거치른 바윗길에 밧줄도 제법 여러군데 걸린 급경사를 내려 11시에 대법원 연수원 공사장을 지난다. 공사장 우측으로 길을 따르다가 마루금 위에 앉아 있는 밭을 지나 11시 10분 다시 산속으로 들어간다.

 

그다지 높지 않은 봉우리이지만 더위 때문에 체력은 이미 많이 소진되어 가고 있으니 페이스를 약간 늦추어 여유로운 걸음으로 올라간다. 200여미터의 고도를 올리며 정상에 오르자 정맥길은 좌측으로 틀어 능선을 타면서 저 밑에 천치재로 오르는 29번 국도가 U자 모양을 그리며 눈 앞에 나타난다.

 

날머리는 보이지만 도로의 모습으로 볼 때는 능선을 타고 내려서도 작은 여울은 두어개 더 넘어야 할 듯이 보인다. 어디 마땅히 쉴 곳이 없다. 햇볕에 쉬면 무덥고 그늘에 쉬면 산모기가 바로 달라 붙어 헌혈을 요구한다.  내리막길 중턱 그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발길을 빨리 움직여 12시 26분 천치재로 나서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