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호남정맥산행기

호남 2구간(슬치-옥녀봉-경각산-불재-염암재)

만석공원 2009. 6. 7. 21:14

일자 : 2009.6.7 (무박)

구간 : 슬치-옥녀봉-경각산-불재-염암재

실거리 24.6 Km  (누적거리 : 49.2 Km )

시간 : 8시간 50분

 

이따금씩 밤 길을 가던 승용차들이 들락거릴 뿐

텅 비다시피한 여산 휴게소 한켠에서 불빛을 받고 있는 버스가 외롭다.

 

버스 예약에 운영진들의 싸인이 제대로 맞지 않았던지 급하게 새로 수배하여 예정시간보다 30분

이나 늦은 11시 30분에 사당역을 출발한 버스는 숨 한번 제대로 돌릴 겨를도 없이 이 곳까지 달려왔다.

혹은 새벽 식사를 해결하고 혹은 물을 보충하고 삼사십분 휴식시간의 여유로움에 쏟아지는 새벽

잠을 가까스로 털어 내고 버스에서 내린다. 새벽 1시에 먹는 밥을 누구인들 맛으로 먹겠냐만서도 언

제나 이 때 쯤이면 적쟎은 고민이다. 먹으려니 밥 맛이 없고, 안 먹으려니 새벽 산행이 걱정되고...

 

다음부터는 차라리 인스턴트 식품이 낫겠다는 생각으로 우동 한그릇으로 빈 속을 채워 넣은 후 휴게

소 마당을 지나며 고개를 들어보니 오월 열나흩날의 덜 채워진 달이 창백한 얼굴로 구름 속에

숨바꼭질하는 모습이 오늘 산행에 비는 그다지 걱정을 안해도 될 듯 싶다..

 

얘가 구렁이 제 몸 추듯하네?

어릴적 어머니가 가끔 하시던 말의 뜻을 이해하기까지는 상당히 시간이 흘러 머리가 제법 굵은 뒤에

그 말이 구렁이가 아니고 초나라의 '굴원'이라는 옛사람임을 알았다. 커가는 자식이 자기자랑하는 모

습을 바라보며 자신의 생각과 글에 자화자찬을 하는 일이 많았던 굴원의 모습을 비유하며 일견 대견스

러워하는 모습으로 말씀하셨을 터이니 이런 모습은 어느 집 어머니나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성 싶다.

    

세상을 바꿔보려 꿈을 가졌던 우리의 전직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세상을 떠나는 모습에 진나라의

침략에도 대항할 생각은 하지 않고 모든 관리가 자신의 이익만을 탐하며 부패로 썩어 빠진 초나라의

조정을 한탄하며 62세의 나이로  멱라수에 몸을 던진 2천 3백년전 굴원의 모습이 구름 속을 흐르는

속에 잠시 오버랩된다.

 

新沐者必彈冠 新浴者必振衣(신목자필탄관 신욕자필진의)

머리를 감았으면 갓은 털어서 쓸 일이요. 목욕을 했으면 옷은 털어 입을 일이다.

 

굴원의 어부사에 나오는 이 말은 소싯적 교과서에까지 나오는 말이니  익히 들어 알고는 있지만 인생

에 있어 이처럼 세속에 물들지 않고 살아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창랑지수청혜 가이탁오영, 창랑지수탁혜 가이탁오족)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창랑의 물이 탁하면 발을 씻는다.

 

어부가 당시 나라의 안위 걱정으로 실의에 빠진 초나라 대부 굴원에게 조언하는 형식으로 이어지는 이

글은 해석 방향에 따라 여러 의미로 주석을 달지만 주어를 굴원에게 놓고 세상이 맑으면 맑은대로 혼

탁하면 혼탁한대로 몸을 맡겨 함께 흘러가는 것도 괜찮지 않은가라는 의미로 해석을 해본다.

 

독보적인 능력과 청렴함으로 당시 정세를 꿰뚫고 천하 통일을 꿈꾸는 진나라에 대항해 초나라가 살아

날 수 있는 방법은 국가간 연대를 통한 합종 대항 뿐이라고 제언했지만 조정 대신들의 부패와 함께 회

왕의 우둔함으로 버림 받고 끝내 멱라수에서 돌을 가슴에 안고 몸을 던진 굴원의 모습에서 전직 노대

통령의 모습을 읽는다.

 

굴원으로 인해 생긴 단오는 굴원의 시체를 건지고 고기밥을 주는 용선 축제로 변하여 2천3백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오는데 그의 고결한 이상과 조국을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 그 어느 작은 조각 하나도 가슴에 새겨 보지 못하고 반백이 넘는 시간을 헛되이 훌쩍 넘겼다는 사실이 슬픔을 갖게 만든다.

 

깨끗한 몸에 먼지가 묻은 옷을 입고 더러운 갓을 쓸 수 없어 물 속으로 들어간 굴원의 모습처럼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의 근본인 청렴 도덕성에 상처를 견디지 못해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진 노무현 전대통

령의 자취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많은 부분이 해체 조립을 반복하면서 역사 속

에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이내 출발하는 버스 안에서 다시 잠을 청하려 눈을 감아 보지만 이런저런 생각으로 다시 잠들기는 쉽

지 않은 가운데 새벽 3시 차는 슬치 마을회관 앞에서 우리를 풀어 놓는다. 마을 회관과 회관 곁에 있는

정자는 호남지역임을 알리는 표준화된 틀이다. 마을에 따라 정자는 회의 장소로 TV까지 설치해 놓

깔끔히 사용하는 곳도 있고, 마을 공동 농사 용품들을 저장하는 창고로나 쓰고 있기도 한데 이 곳 슬치

마을은 아마 후자에 가까운 듯 정자는 포장으로 둘러쳐져 있다.

 

담배 농사가 이 마을의 주요 농산물 중에 하나인 듯 마을 어귀는 이미 허리춤을 넘게 자란 커다란 잎의 담배밭이 새벽의 우리를 먼저 반긴다. 선답자들의 산행기는 마을 회관 오른쪽으로 들어가 능선을 타도

록 안내되어 있기도 하지만 3시 20분 우리는 마루금 원칙을 지키는 산행을 위해 마을 앞에서 오른쪽으

로 돌아 오르는 포장도로 방향으로 헤드랜턴을 비추기 시작한다. 도로를 타고 돌아 왼쪽으로 길을 벗

어나 고구마 밭둑길을 올라 담배잎을 이미 말리기 시작한 비닐하우스를 흘낏 바라보며 지나쳐 차량 통

행을 막는 차단 시설을 두어군데 해 놓은 시멘트 도로를 따라 올라 마루금을 밟기 시작한다.

 

3시 35분 마을 뒤로 이어 올라온 임도와 합쳐진 길은 이윽고 산길로 접어 들고 실치재를 향해 오르막

길을 오르던 길은 오른쪽으로 급히 틀어 내려 다시 편안한 농로로 내려 서 동물 이동통로 위를 지나

편안한 임도를 따라 30여분 정도 약간의 출렁거림으로 고도를 높여 가며 흘러 4시 20분에는 임도 끝머

리에서 후미와 함께 진행을 하기 위해 잠시 휴식을 취한다.

 

본격적으로 산으로 접어든 정맥길은 군부대 울타리 곁을 따라  올라 이미 날이 밝아 오는 것을 알리는

새소리와 함께 검은등 뻐꾸기 소리가 귀에 잦아들 때 쯤인 4시 53분 갈미봉 위 헬기장에 올라 후미와

함께 속도 조절을 위해 휴식 시간을 갖는다. 이미 환하게 밝은 날씨에 랜턴을 접어 넣고 발목이 푹푹

빠지도록 낙엽이 쌓인 제6 탄약창 철조망을 따라 내리다가 부드러운 낙엽 숲길로 접어든 길은 5시 33

분에 양쪽 소로길의 흔적만이 남은 수풀이 무성한 쑥재에 내린다.

 

한장의 증명을 남긴 후 가파른 오르막길을 따라 땀이 뒷덜미를 타고 흐를 때 쯤 옥녀봉으로 향하는 갈

림길을 지나 배낭을 벗어 놓은 후 6시 14분에 옥녀봉에 올라 사방을 둘러 보지만 어슴프레한 새벽 운

무에 참나무 숲으로 가려져 조망도 시원치 않은데 박격포 포상처럼 움푹 패인 정상에는 정상석도 없이

표지판은 초라하고 훼손된 삼각점만이 정맥꾼을 반긴다.

 

갈림길에서 간식과 함께 휴식 후 급경사를 따라 내린다. 50여미터 정도의 고도가 한번 출렁거리며 지나자 6시 45분에는 우측으로 임의 조성한 듯한 편백나무 숲이 길손을 반긴다. 그냥 무심결에 멀리서 바라보면 쭉 뻗은 모습이 낙엽송이나 전나무 싶기도 하여 가까이 나뭇잎을 바라보니 손바닥 모양으로 눌린 듯 부드럽게 펼쳐져 있다. 나무 이름을 바로 알 수 없어 나뭇잎 사진만 찍은 후 임실군 홈피를 조사해 보니 6.25 때 황폐해진 이 곳 일대에 편백나무로 조림이 많이 되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다른 나무

에 비해 피톤치드를 5배 이상 뿜어낸다는 편백나무 산림욕을 하며 또 한차례의 출렁거림을 넘는 산

마루에서 앞서가던 백두대장님과 산님들이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지만 뱃 속이 아침 식사

를 바라지 않으니 인사만 하고 길을 지나친다.

 

급경사를 따라 내린 길은 7시 9분 길의 흔적도 없이 정맥 리본만 몇개 달린 효간치를 지나며 또 다시

큼지막한 오르막길을 앞에 내어 놓는다. 코가 땅에 닿도록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걸음이 무겁다고 느

껴질 무렵 마당 바위로 펼쳐진 암봉에 올라 건너편 구름이 골짜기를 타고 넘는 부드러운 경각산의 모

습을 올려 본다. 간식과 함께 골짜기를 타고 올라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조월리 저수지의 아름다

운 모습에 잠시의 피곤함을 잊고 마당 바위에 앉는다.

 

이곳 신덕면의 반대편 저 끝은 오수의 개 전설로 유명한 오수면이다.

옛날 신라시대 김개인이란 사람이 장에 다녀오는 길에 원동산을 넘다가 술에 취해 고갯에서 잠이 들었

는데 산에 우연히 불이 붙어 잠을 자고 있는 쪽으로 불길이 다가서고 있었다. 함께 동행하던 개가 냇가

에서 물을 묻혀 왔다갔다 하면서 주인 주변에 불이 번지지 않도록 하여 주인을 살렸고, 나중에 주인이

술이 깨어 주변을 바라보니 개는 불에 타 죽고 김개인은 살아났으니 주인을 위해 목숨을 버린 개에 대

한 미담이다.

 

고려 중엽 최씨 집안의 무신 정권이 정국을 잡고 있을 때이니 13세기에 최자가 지은 보한집에 있는 이

전설은 지금도 아이들 동화책에 실려 전해지고 있다. 당시에 최자도 그로부터 천년전에 전해오는 이야

기를 적어 놓았다고 하니 그 옛날 거래 방식이라고는 물물 교환 밖에 없던 시절 이 같은 지에 장이라

는 것이 어디 있었을 것으며,목숨 연명이 다급한 일반 백성이 취하도록 마시는 것도 상상키 어렵고,

은 날에 아무 일없이 불이 나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고,산불이 접근하지 못할 정도면 많은 물이 필요한

데 물 묻은 개가 뒹구는 것으로 가능하다는 것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대개의 전설 신화나 종교적 이야기들이 그렇듯이 실제적인 가능성이 없을수록 그 신비함을 더하기 때

문에 일반 대중에게 쉽게 감동을 주고 믿음으로 따르게 만드는지라 당시 무인 집권 세력에 대한 무조

건적 충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거의 대다수가 문맹인 백성들에게 그림을 통해 계몽하기 편하도록 소설

적 구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을 하면서 해방 이 후의 현대사에서 이 이야기가 부쩍 알

려져 있음이 우리의 어지러웠던 현실과 멀지 않음을 느낀다.

 

개조차도 이렇게 먹이를 주는 주인을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는데..

너의 생을 보살피는 지배자에게 너는 어찌해야겠느냐..를 묻고 있는 듯 한 이야기다.

 

암봉을 뒤로 하고 풍화되어 부서진 자갈로 미끄러운 내리막길을 조심스레 내렸다가  경각산을 향해 또

한번 뜨거운 입김을 토하며 달라 붙어 오전 8시 경각산에 도착하지만 산불방지 무인 시설인 콘테이너

박스와 감시 카메라만이 정상의 헬기장 곁을 지키고 있을 뿐 정상석도 없는 쓸쓸한 모습이다.이 곳 주

민조차 산행을 하지 않는지 산객을 위한 산행길은 전혀 관심도 없고 다듬지도 않은 모습으로 정맥길이

남아 있고 그나마 정맥꾼들이 위치 표시를 해 놓고 있는 모습이다. 시설 훼손을 막기 위한 주의 표지판

이 붙어 둘러쳐진 철조망 안에 경각산임을 알 수 있는 이정표가 그대로 서 있는 것을 보아도 얼마나 지

자체가 산행 안내에 무심한 지 한 눈에 알 수 있는 일이다.

 

정맥길은 바로 옆에 서 있는 옛날 산불감시탑을 지나 불재를 향하는데 분재 모습으로 수십년을 살아가

소나무 한그루가 마루금을 막는다. 나무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스스로 힘든 질곡의 삶을 살아

가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바닥의 모양, 토양 그리고 인위적 외부 자극이 나무의 모습을 만들 듯 사람

도 내부 가정 환경과 외부 환경에 의해 모습이 만들어질 것이다. 내부 환경이야 태생이니 어찌해 볼

도리가 없지만 외부 환경이라도 힘든 환경은 피하며 살고 싶은 마음 가득하지만 이 시대의 흐름도 우

가 그리 편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두지는 않는 듯 하다는 생각을 하며 지난다.

 

내리막길로 접어 들다 나타난 전망 바위는 저 멀리 커다란 구이 저수지의 모습과 그 앞에 펼쳐진 평야의 모습을 눈 앞에 내 놓는다. 대간을 타면서나 정맥을 타면서 이렇듯 넓은 평야를 보기는 처음인 듯

호남정맥길도 서쪽 호남 평야로 바짝 다가섰음을 느끼면서 저 멀리 보이는 불재 숯가마의 모습을 보며

부드러운 낙엽 숲길을 따라 내려 8시 42분에 불재에 도착한다.

 

북진을 하는 산님 3명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 후 자동차가 듬성듬성 지나는 2차선 불재를 건너 불재참숯 위로 오르다가 숯을 굽기 위해 쌓아 놓은 참나무 더미 뒤에 앉아 늦은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숯가마 건물 아래 축대 왼쪽으로 길을 따라 능선으로 오른다. 정맥길이 임도를 따라 가면 능선

으로 붙어 갈 수 있다고 마주친 산님들에게 들었던 탓에 그냥 임도를 따라 오르다 보니 활공장의 멋진 조망을 놓치고 9시 26분에 바로 능선 정맥길로 붙는다.

  

부드러움으로 몇번의 가벼운 출렁거림을 주던 길은 다리 운동을 시킬 작정인지 갑자기 눈 앞으로 된비

알을 앞세운다. 온 몸이 땀으로 흥건해지고 숨소리가 거칠게 변해가는 10시 24분 나무기둥에 607봉이

라는 표지가 붙어 있는 헬기장 봉우리에 닿는다.

 

후두둑~~.. 헬기장에 앉아 사과로 간식을 먹는 중에 소나기가 상수리 나뭇잎을 때리기 시작한다.

하늘을 보니 지나가는 비는 분명한데 몸이 젖어 내게 이로울 일은 하나도 없으니 일단 우의를 꺼내 입

고 등산화 비가림 치장도 한다. 숲 속으로 들어서도 내리던 소나기는 점차 빗줄기가 약해지더니 이윽

고 그친다. 배낭 속으로 우의를 접어 넣은 후 몇년 전에 벌목을 했던 자리인 듯 키 작은 싸리나무 상수

리나무 그리고 옻나무등의 잡목만이 무성한 길을 헤치며 내려  고개 흔적도 거의 없는 작은 불재를 지

난다.

 

정맥길은 또 한차례 긴 숨을 토하게 오르막을 지난 후 다시 편백나무 사이로 부드러운 능선 길을 안

내하며 숨을 돌리게 만들다가 남은 힘을 소모시키려는 듯 제법 가파른 오르막 길을 코 앞으로 바짝 들

이댄다. 급경사를 들어 올리는 발 밑의 등산화 무게가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들어갈 때 쯤 길은 능선을

타고 올라 왼쪽으로 완경사 30여미터를 더 올려 무명 봉우리의 넓직한 자리에 닿는다. 경각산까지 시

원하게 불던 바람은 불재를 지난 후에는 바람 한 점 없으니 산 위에 올라와도 구름에 가려 햇볕만 없을

뿐 몸은 몹시 덥다.

 

물 몇 모금에 방울 토마토 한주먹으로 휴식을 한 후 11시 50분 낙엽길을 밟아 내리니 왼쪽 아래 마을부

터 마루금까지 벌목을 하여 환한 조망이 된다. 멀리 저수지를 내려다 보며 마루금을 따라 봉우리를 넘

어 내리니 저 멀리 오른쪽에 염암재의 구불거리는 모습과 우리를 기다리는 버스의 모습이 보이는 전망

위에 12시에 도착한다.

 

버스까지 능선을 타고 걷는 줄 알고 30여분은 능선을 탈 줄 알았더니 길은 바로 염암재 절개지 왼쪽을

하게 타고 내려 12시 10분에 고갯마루에 내린다. 한장의 증명 사진을 남기고 고개를 넘어 버스가 대

하고 있는 곳으로 걸어 내려 12시 20분 오늘의 산행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