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 : 2009.5.17 (무박)
구간 : 모래재-곰치재-만덕산-박이뫼산-슬치
실거리 24.6 Km (누적거리 : 24.6 Km )
시간 : 8시간 10분
주일 내내 맑았던 날씨는 주말이 되자 구름 속으로 들어 간다.
토요일 하루만 비가 오고 개였으면 하는 바램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클릭한 인터넷의 날씨예보에서 전주 임실지역의 일요일 날씨는 강수확률 60%라는 수치가 변하지 않고 있음에 우중산행을 각오하며 산행길을 나선다.
사당 출발점의 빗줄기가 약해짐에 기대를 해보지만 내려가는 길에 머무는 탄천 휴게소의 빗줄기는 더욱 굵어져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빗줄기가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음에 산뜻한 산행을 기대했던 실낱같은 희망은 맘 속으로 깊숙이 접어 넣는다.
어설픈 잠을 청하다가 깨어 비몽사몽으로 혼미한 새벽 3시 차량은 모래재 휴게소 주차장에 멈추고 몇시에 출발할 것인지 정확히 고지되지 않고 먼저 깨어난 대원들이 산행 준비를 하는 사이 금남정맥 분기점을 다녀 오지 않은 대원들이 먼저 산행할 것이 결정되고 나머지는 새벽 4시에 산행을 시작할 것이라는 백두 대장님의 뒤늦은 설명이 있지만 이미 깨어버린 잠이 다시 올리 없고 하나둘씩 우중산행을 준비하여 차에서 내리기 시작한다.
이미 산행 준비를 마친 대원들이 가랑비 내리는 휴게소 마당에 대기하고 있는 것이 무의미함을 인식한 백두님의 산행 지시가 떨어지자 3시 50분 일제히 모래재 터널 왼쪽 구도로를 따라 호남 정맥 종주를 위한 첫걸음을 시작한다. 구도로를 따라 오르던 길이 급격히 오른쪽으로 꺽어져 들어가는 지점에서 산 속으로 들어가는 지점이 지난 번 내려온 길임을 외워 두고 있었는데 오르다가 길을 잘못 들었는지 어느 집안 선산 묘지 곁을 끝으로 타고 돌아 능선 위의 정맥길로 올라서 정맥길을 시작한다.
어제부터 밤새 내린 비에 예상했던대로 오르막길은 가파름으로 인한 산행의 어려움보다는 미끄러짐으로 산행을 이어가기가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100여미터의 고도올림은 되었을까 땀한번 제대로 흘릴만한 여유도 없이 올라 캄캄한 빗길 능선을 타고 흐르던 길은 갑자기 임도로 내려 놓으며 방향을 잃게 만든다.
이어진 능선 모습을 보면 좌측으로 틀어가는 것이 맞을 듯 한데 20여미터를 진행하니 임도는 끝나 버리고 우측으로는 임도를 따라 급경사로 내려가는 길이니 먼 조망도 되지 않는 한밤 가랑비 속에 운무만 가득한 가운데 잠시 갈길을 찾지 못하고 오르내리며 잠시 우왕좌왕 한다.
나관중이 소설로 엮어 놓은 위촉오의 이야기를 다룬 삼국지연의가 너무 알려진 탓인지 사실상 당시 중국 대륙의 주인이었던 광무제 이후의 후한시대와 십상시들의 환관 정치로 정국이 혼란스러웠던 시기의 헌제는 삼국의 전쟁 무용담을 그려내기 위한 밑바탕 역할 이상을 우리들의 머릿 속에 넣고 있지 못한다. 조조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 이십여년 전 정도인 서기 130년대 쯤 후한의 순제 때에 장해라는 사람은 도술이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그 박학다식함에 늘 100여명 정도의 문하생들이 배우기 위해 머물렀다고 하나 당시 후한 황제인 순제의 등용 요청에도 응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살던 장해는 도술에 능통하여 사방 5리 정도의 안개를 마음대로 만들어 몸을 감추는 능력이 있었다고 후한서는 전하고 있다. 당시의 역사가 그렇듯 후한서라는 것도 여기저기 전해 내려오던 글들을 천여년 가까이 차이가 나는 후대인 남송 때 범엽이 편집하여 완성한다. 중국인들의 침소봉대하는 향대과장은 익히 알려진 터이니 오늘의 과학으로 보면 가볍게 웃음지으며 넘길 황당한 얘기들이 많이 전해지는 가운데 이 이야기도 그중 한토막일 것이다. 어찌되었든 이로 인하여 연유된 오리무중(五里霧中)의 사자성어는 지금도 갈피를 잡지 못할 경우에 종종 쓰이곤 하는 말로 굳어졌지만 장해가 새벽 안개를 둘러친 듯 우리는 갈 길을 몰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잠시 헤매이다 임도에서 우측으로 급히 100여미터 정도를 내려 임도 좌측 리본이 달린 길을 찾아 정맥길로 다시 들어선다.
인생을 살아 가면서 한치 앞도 내다 보기 어려운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혼자 생각에 맞다고 생각하던 길이 끊어지고 갈 길을 몰라 헤매이던 길이 또 얼마나 많던가!
운무 가득한 어둠 속 혼란 속에서 많은 동료들이 서로 도와가며 길을 찾는 모습을 보며 내게 인생길도 이처럼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들이 몇이나 있을까 생각하면서 먼저 살다 간 선답자들이 남겨 놓은 선명한 흔적조차 무시한 채 아집으로 나의 인생길을 흘러가는 것이 아닌가 돌아 본다.
지나보니 이 부분이 죽전치인 모양이긴 하지만 비내리는 밤길에 정확한 위치는 파악할 겨를도 없이 능선을 타고 오르며 비가 림한 속 옷까지 후끈해질 무렵 514봉을 거치고 왼쪽 아래에 마을이 가까이 있는 듯 들려오는 새벽 닭과 산새들의 합창이 새벽을 여는 숲길 능선을 흘러 내려 웅치전적지 안내판 앞에 5시 17분에 내려 놓는다. 비교적 가파르지 않은 이 고개는 전주와 진안을 잇는 도로들이 개통되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왕복하던 중요한 고개로 임진왜란 때는 이 곳을 넘어 공격하던 왜군들을 맞아 싸우다가 중과부적으로 많은 전사자를 낸 자리라고 곰티재 웅치전적지 안내판은 설명을 읽으며 어둠이 걷히는 여명 속에서 숙연한 마음으로 앞뒤를 돌아 보지만 가랑비 속에 가득한 운무는 고갯길의 흔적도 그 옛날 격전지의 모습도 확연히 나타내지 못한채 예전에는 이 정도의 야산에도 곰이 살고 있어 웅치라는 이름이 붙였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고갯길을 건너 오르막을 향해 달라 붙는다.
왼쪽은 사유림인 듯 마루금을 따라 쳐진 철망 곁을 따라 오른쪽 숲 속은 검은등 뻐꾸기의 소리가 운무 속에 오락가락 하는 가랑비를 뚫고 처량맞게 들린다는 생각을 해 본다. 봄철 번식기에 새벽을 여는 새소리는 자신의 영토을 침입한 반갑지 않은 불청객에 대한 항위 시위일거라는 생각을 가끔 해 본다. 자신의 대를 이어가는 생의 가장 중요한 번식기에 느닷없이 영역 침해를 당하는 것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일까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다른 여늬 새들과는 다른 독특한 소리를 가진 검은등 뻐꾸기는 굳이 새 전문가가 아니라도 항상 네 음절로 쉽게 구별할 수 있는 특징 때문에 전설을 안고 살아가는 모양이다.
누가 이런 그럴듯한전설을 만들어 놓았는지 모르지만 옛날 스님이 도를 게을리하고 죽은 뒤 후회를 하여 새로 환생하여 후세에 영겁의 가르침을 전한다는 검은등 뻐꾸기는 그 울음소리가 '홀딱벗고'라는 말과 매우 흡사하여 '홀딱벗고새'라고 하기도 한다.
사랑도 홀딱벗고..
미련도 홀딱벗고..
번뇌도 홀딱벗고..
아침은 밝아와 주변은 훤하지만 운무로 주변 조망은 되지 않고 이따금 흩뿌려대는 가랑비를 받으며 걷는 마루금길에서 네 몸이 비에 젖은 것처럼 네 마음을 적신 모든 부질없는 욕심을 벗어내라고 홀딱벗고새는 계속 나를 따라 다니며 홀딱 벗어 버릴 것을 주문한다.
철망을 따라가던 길은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며 돌아 내려 김해김씨 선산 곁을 따라 내려 웅치전적비 곁을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 곰치재에 5시 45분에 내린다. 우리나라에 곳곳에 위치한 많은 수의 전적비는 이데올로기의 충돌로 발생한 형제끼리의 집안 싸움에서 이긴 것을 자랑스럽게 세워 놓은 것이 대부분이지만 요즘에 세웠을법한 이 곳 전적비는 자신의 밥그릇만을 지키기 위한 당파싸움에 몰두해 나라가 국민을 위한 준비를 하지 못했음에도 민관이 합쳐 몸으로 나라와 가족을 지켜 내려 했던 민초들의 역사를 이야기 하고 있어 비에 젖은 가슴 속을 후끈하게 달아 올린다.
시멘트 농로 정도로 보이는 곰치재를 가로 질러 숲으로 올라 안개비 속에 산 속은 시끄러운 차량 소리로 요란스러운 것이 익산에서 진안으로 지나가는 고속도로 터널이 발 밑으로 지나는 모양이다. 본래부터 이 초록별 주인이 누구였을진대 가장 늦게 초록별에 온 두발로 돌아 다니는 짐승이 이렇게 세상을 힘들게 만들까. 귓청을 찢어 대며 질주하는 타이어 소리를 들으며 산 속을 지키고 살아가는 주인들에게 미안한 생각에 만덕산 가는 길을 재촉한다.
완경사를 타고 부드럽게 구릉을 넘던 길은 왼쪽으로 꺽어 내려 예전에는 무슨 농사를 지었는지 흔적만 남은 채 싸리나무만 가득 자란 밭둑길을 오른쪽으로 타고 돌며 오두치를 6시 31분에 지난다. 육산 낙엽길로는 산행의 묘미를 느낄 수 없다는 듯 약간의 거친 바위가 손을 함께 쓰도록 만드는 급경사를 타고 올라 7시 6분 군용 통신기지인 듯 콘테이너 박스가 울타리를 치고 앉아 있는 만덕산 갈림길에 닿는다. 비가 계속 내려 대니 지도를 펼쳐볼 생각도 들지 않고 지도를 외우지도 않은 탓에 이곳이 만덕산이라는 착각을 한다. 한켠에 앉아 아침식사를 할까 잠시 생각을 하다 간식으로 준비한 바나나를 먹으니 능선을 타고 넘는 바람에 금방 몸이 식는다.
내리막길의 바위 능선을 따라 내려오며 날이 좋으면 조망이 참 좋겠다 싶었지만 아직도 장해가 펼쳐 놓은 오리무중은 걷힐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쉬움으로 조심스레 바위 능선을 지나 왼발에는 진안을 버리고 임실군을 받아 들여 숲으로 접어들어 정수사 갈림길인 마치를 지나 하얀 꽃으로 뒤덮인 산딸기밭을 지난다. 하지 쯤 산딸기로 온통 빨갛게 뒤덮였을 때 이 곳을 지났다면 아마도 발길을 상당시간은 늦추었으리라. 지난 해 대간 종주 때도 삼도봉에서 우두령을 넘다가 모든 것을 내던지고 30여분정도를 정신없이 지천에 널린 산딸기를 따먹던 기억을 떠 올리며 산딸기를 주제로 한 고향 물씬 풍기는 시나 한편 감상하며 지나가자.
산딸기 꽃 / 山下
시도 사랑도 안 되는 사월은 가고
초록에 푸른 멍이 들어도 좋은 오월은 어서 와라
장미에게 빼앗긴 사랑 하얀 꽃잎이라도 쥐어뜯으며 뜨거운 가슴 전하리라
별을 세다 언덕에 퍼질러 앉아 찔레처럼 여린 사연
아카시아 꽃 숭어리 사이로 이슬 젖어 만나보리라
산들바람 속삭일 때 청 보리 사잇길 쑥국새 따라오고 노을 당겨 붉어지는 산소 같은 애인
신맛에 반해 낮술에 취해 달콤한 자연산 복분자 아가씨 입술서리 가리라.
고도를 낮춰가면서도 몇차례의 출렁거림으로 이어지는 정맥길은 아침을 먹지 않은 체력을 조금씩 조금씩 배내가고 100미터 고도 올림도 되지 않는 봉우리에 8시 30분에 올라 숨을 돌린다. 운무에 싸여 이 곳이 어딘지도 모르겠고 빗줄기는 흩뿌리고 멈추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주머니 안에서 지도를 꺼내 살펴보니 566봉 즘 되는 것으로 감을 잡는다.
잠시 서서 빨대로 목을 축인 후 함께 하는 산님께서 건네는 방울 토마토 두세개를 입에 넣은 후 다시 산행을 시작한다. 비가 오락가락 하긴 하지만 고도가 낮아지면서 내려 온 탓인지 제법 먼 곳까지 보이기 시작하는데 하얗게 산을 덮은 아카시아 꽃 향기가 정맥 마루금을 덮는데 능선까지 개간해서 만든 넓은 밭에는 소먹이로 기른 듯 사람키를 넘도록 훌쩍 큰 호밀이 바람에 따라 일렁이기도 하고 비에 젖어 피곤한 몸을 눕히기도 하며 지나가는 길손을 반긴다. 역시 아침을 먹지 않은 체력은 서서 잠시 쉬어 가는 것으로는 복구가 되지 않는 듯 비교적 빠른 걸음으로 1시간여를 지나자 급하게 체력이 소진되어 가는 것을 느낀다. 416봉 삼각점을 돌아 작은 출렁거림으로 능선을 넘던 정맥길은 갑자기 고도를 올리기 시작하니 몸은 쉬어가기를 요구하여 발이 무거워지기 시작하고 등산화가 젖어 개구리 소리가 난지 제법 되었을 때 쯤인 9시 40분 고도가 480정도 되는 무명봉에 올라 함께한 산님들을 먼저 보내고 모퉁이에 앉아 참외 하나로 빈속을 채운다.
땀과 비로 온몸이 엉망이 되어 가는데 흩뿌려 대는 비와 능선을 타고 넘는 바람은 금방 체온을 떨어뜨리니 오래 쉬는 것이 오히려 고역이다. 천천히 일어나 발을 옮기지만 현저히 늦어진 발걸음으로 빗물이 아롱아롱 맺힌 싸리나무 잡목을 헤치며 능선길을 내려 앉아 10시 50분에는 신전리 윗부분 두무실에서 이어져 올라온 이름도 없는 고갯길에 내린다.
입산금지 팻말과 함께 마루금을 따라 쳐진 철조망 너머로 무엇을 개발하려는지 온통 뻘건 황토 흙으로 파헤쳐져 있고 철조망 너머 덩그러니 놓인 콘테인너 박스 주변으로는 세마리의 애완견이 비와 흙에 뒤범벅이 된 꾀죄죄한 모습으로 불청객에 항의하듯 짖어 대는 모습을 보며 매일 침대 위에서 잠을 자고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호사를 누리는 우리집 말티즈가 떠오른다.
개 팔자도 그렇듯 사람 팔자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중국이 전국시대로 나뉘어 싸우기를 몇빽년. 전쟁은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 천하의 패권이 진나라의 시황제가 될 정에게 기울어 가는 조짐이 보이는 때이니 기원전 250년 정도는 되었음직하다. 남쪽 초나라 변방에는 진나라의 남진을 막기 위한 군이 주둔해 있었고 작은 중대 규모의 보급품 창고지기를 하던 이사라는 사람이 있었다. 중대 규모의 살림 책임을 가지고 있으니 그런대로 다른 병사에 비하면 여유 로움으로 틈만 나면 주막 주모와 농짓꺼리로 소일을 삼고 있었다. 어느 날 주막에서 술이 취해 밤 늦게 들어와 속이 불편하여 뒷간에 들어간 이사는 인기척에 놀라 도망가는 쥐소리를 듣고 깨닫게 된다. 똑 같은 쥐인데 어느 놈은 곡식 창고에서 놀라는 기색없이 배부르게 먹고 살이 찌는데 어느 놈은 한 밤중에도 이처럼 더러운 뒷간에서 먹을 것을 찾아 다니다 인기척에 놀라 도망가는가. 사람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어느 곳에 있는가에 따라 그 운명과 미래가 틀려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이사는 그 길로 당시에 천하에 명망을 얻고 있던 순자 문하에 들어간다. 공자 맹자의 뒤를 이어 순자는 맹자의 성선설과는 달리 당시 너무나도 무자비하고 참혹한 전쟁의 모습으로 황폐해진 인간의 본성을 많이 본 탓에 인간은 본래 악한 본성을 가지며 교육을 통해서만이 인간다운 모습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성악설을 설파하고 있었다.
10여년간 순자 문하에 머물다 진나라에 들어간 이사는 진왕 정에게 발탁되어 천하를 통일시키는 주역으로서 40여년간 재상 생활을 하게 된다. 천하통일 이 후로 각종 개혁을 통해 국가 안정에 노력하여 공로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분서갱유에 개입된 잔학함과 본인보다 똑똑했던 수학동문 한비자를 자살하도록 만든 비정함에 후세의 평가에서 많이 소외되고 있지만 뒷간의 쥐를 통하여 깨달음을 안겨 주는 부분은 현대의 삶에서도 그 시사하는 바가 작다고 하기는 어렵다.
원래가 정맥 마루금이었을 파헤쳐진 왼쪽 산 철조망 곁을 따라 완만하게 오르다 산으로 들어간 길은 밤나무 밭을 가로 지르며 부드러운 구릉성 언덕으로 올라서서 제법 넓지막한 평전에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운 곳에 닿으니 이곳이 황산재인 모양이다. 꽤 넓은 풀밭에서 나무에 달린 시그널은 오른쪽으로 틀어 내리는 임도로 안내를 한다. 정맥마루금 조망이 되지 않으니 임도를 따라 내려가다 불안해서 뒤로 돌아 올라와 점검을 해봐도 다른 곳으로 새는 곳은 없으니 그냥 임도를 따라 내려간다.
11시 20분 시멘트 도로로 나서면서 멀리 인삼밭과 함께 부드럽게 펼쳐진 구릉성 마루금과 함께 농로들이 어지럽게 보이기 시작하고 마루금 위까지 모두 밭으로 변해 있는 모습이 펼쳐진다. 능선으로 이어진 마루금의 방향을 짐작한 후 이따금씩 길가에 달린 시그널을 찾아 우측으로 방향을 트는 시멘트 도로를 따라 내리다가 왼쪽 비포장 농로로 접어 들어 간다. 포장 농로가 끝나고 시멘트 포장로가 이어짐면서 왼편 아래로 산을 깍아내려 도로를 건설하는 모습이 보이고 지도도 모두 젖었으니 멀리 앞쪽으로 보이는 산이 박이뫼산인지 구별해볼 생각도 되지 않고 그 뒤로 흐르는 차량도로가 보이니 도로까지 나가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마루금의 방향을 짐작하니 시멘트 길을 따라 안부로 내려섰다가 양쪽 밭 사이로 난 건너편 길을 따라 오르는 것으로 보인다.
이 사람들이 글쎄 비를 맞고 새벽부터 모래재부터 걸어오는 거래.
도저히 그 먼길을 걸어가는 이유를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듯이 수군거리며 지나는 마을 사람들을 뒤로 하며 이제는 비도 잦아 들고 호밀밭을 출렁이게 만드는 시원스런 바람결을 따라 시멘트 포장로를 따라 언덕길을 올라 우측으로 틀어 정맥길은 다시 산 위로 향하는 임도로 들어선다.
산위에서 왼쪽으로 굽어 도는 임도에는 리본이 붙어 있는데 방향이 아닌 듯 싶어 20여미터를 더 진행하니 오른쪽 산길로 틀어 내리라는 좋은 사람들 이정표가 바닥에 깔려 있고 산길 옆으로 리본이 몇개 달려 안내를 한다.
앞산으로 마루금이 이어질 듯 한테 왜 오른쪽 산길로 내릴까 하는 생각으로 산길을 벗어나니 시멘트 도로를 따라 바로 도로로 내려가는 길로 나온다. 저 앞산을 가야할까 망설이며 시멘트 도로를 따라 잠시 오르내려 보지만 리본도 바닥 표지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길을 따라 도로까지 내려가는구나 생각하며 가지만 이 후에는 리본이 보이지 않으니 정확한 마루금 식별도 되지 않고 산위에까지 여기저기 밭이 있으니 이런 곳은 정확한 마루금 산행도 대충 마루금만 짐작한 채 길을 따라 진행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 본다.
17번 국도 곁으로 나와 오른쪽 고개 위 슬치휴게소에 12시에 도착하여 화장실에서 흠뻑 젖은 몸과 흙으로 엉망이 된 옷을 씻어 낸다. 휴게소 식당에서 청국장 한그릇으로 빗길에 아침 식사도 하지 못한 허기를 채우고 함께 한 산님들과 맥주 한잔에 피로와 갈증을 씻어 내며 오늘의 산행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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